고 김천호 충북도교육감 22일 도교육청 강당서 영결식

김천호 충북도교육감(향년 63세)이 20일 새벽 4시30분께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교육감 관사에서 숨졌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고 22일 오전 도교육청 강당에서 유족과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가졌다. 고인의 유해는 보은군 산외면 어온리 선영에 안장됐다.

지난 62년 평교사로 교단에 선 고인은 43년만에 고단한 교육계를 벗어나 영면의 길로 떠났다. 고인은 지난 97년 신장염이 악화돼 제자가 기증한 신장을 이식받는등 정상적인 건강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2년 보궐선거에서 교육감에 당선된 뒤 ‘일중독’이라 불릴만큼 업무에 몰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지기 하루 전날인 19일 일요일에도 보은 삼산·보덕초, 괴산 송명초, 청주 교동초 등의 학교 체육행사에 참석한 뒤 오후 3시 40분쯤 관사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옥천여중 교감 자살사건으로 인한 심신의 피로가 깊은 상태에서, 휴일 일정까지 강행군하면서 몸에 무리가 간 것으로 분석된다.

보은이 고향인 김 교육감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학업성적 1위를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또한 탁구·배구·테니스·축구 등 체육종목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갖추는등 문무를 겸비한 교육자였다. 축구스타 최순호 감독은 초등학교 은사인 고인과의 인연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고인의 유품중에 지난 2월 구순의 노모가 돌아가신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일기가 발견돼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지난 4개월간 노모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원고지에 적고 컴퓨터에 저장했던 것. 특히 지난 15일자 편지글에는 “저 요즘 힘들거든요. 어머님이 붙들어 주세요”라며 절박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1962년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교사로 교단에 선 그는 1974년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 1980년 청주대 법학과, 1986년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각각 졸업한 뒤 2000년 충남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영세 교육감 재직시 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에 발탁됐고 청원교육장 재임시 교육감 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인의 선거출마설이 나돌자 돌연 김영세 전 교육감은 가경초 교장으로 발령내 양자간의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보궐선거에서 이주원 후보와 결선투표까지 벌여 당선됐고 2003년 12대 교육감 선거에서는 찬성표 75%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김 교육감은 재직중에 진보적 교원단체인 전교조와 보수적인 교육관료들 사이에서 적절한 완충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지난 2003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교조 충북지부의 지지후보 미선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운영위원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가 김 교육감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충북지부는 고 김천호 교육감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즉각적으로 애도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2월 모친상을 치르면서 조문객들로부터 부의금을 받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과거 지역 교육계에 만연했던 승진관련 금품제공설이 김 교육감 재임시에는 전혀 나돌지 않았다.

“교육감님, 이제 그렇게 걱정했던,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일 모두 잊으시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지만 늘 해오셨듯이 충북교육에 힘을 주십시오” 자신을 평교사로 밝힌 변종만씨가 인터넷신문 <충북인뉴스>에 기고한 조사의 마지막 대목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