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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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댐에서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5.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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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칠성 댐에서)

일상의 틀을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해 달려갔다.
빗속을 달려가는 버스 차창으로 빗방울들이 매달려 꼭 올챙이모습을 하고 있다. 유리창에 올챙이가 붙어서 헤엄치고 있다는 상상을 하니 순간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그처럼 정겨운 모습이길 기대하며 한참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칠성 댐은 청주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비 내리는 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댐에 갇혀 출렁이는 물은 할 말이 있어도 참고 또 참고 때를 기다리 듯 침묵하고 있었다. 그 것은 마치 내게 서두르지 말고 때를 기다리며 말없이 늘 행함을 먼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엄한 가르침처럼 붉은 황톳물이 소리 없이 뭉클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붉은 물들이 수문을 통과 하는 순간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기나 하듯, 현란하게 쏟아져 내렸다. 광란의 물줄기는 오히려 장엄해 보였다. 귀청을 찢어 낼 듯, 거센 물줄기의 외침은 고된 삶의 사념들로 채워진 내 혈관들을 시원하게 뚫어놓았다.

저토록 치달아 솟는 물줄기는 무엇을 위한 몸부림이고 갈구였을까?

휘돌아 치며 우르릉거리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으로 한 순간에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순간, 나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가 허공으로 치닫는 물줄기를 따라 몸부림치듯 포효하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이내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쾌감을 느꼈다. 솟구쳤다 떨어지는 혼돈 속에서 잠시 제 가야 할 길을 잊고 맴돌다가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향할 때는 노래하며 춤추며 흘러간다. 부드럽고 유약한 물방울하나가 모여 저토록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도 가장 낮은 곳으로만 찾아 내려간다.

물은 제 자신이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을까?

나 또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아름다운 이곳에서 잠시 머무른다는 것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길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걸어 온 길, 메마른 땅에 한 줄기 빗방울 같은 삶일 수는 없었는지.

잠시 그쳤던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내리는 은혜로운 빗물에 속살을 말끔하게 씻어 내린 초목들의 노래 소리가 풋풋했다. 푸른 밭둑으로 허공 가득히 피어 난 망초 꽃이 눈물처럼 하얗게 빗물을 떨구고, 풋풋하게 자란 벼 포기를 바라보는 농부의 얼굴에선 축축한 흙냄새, 신선한 삶의 냄새가 바람결에 묻어온다. 이렇게 빗줄기는 대지로 서서히 스며들어 우리의 생명을 일구어 낸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고루고루 감싸 안고 보듬어 줄줄 안다. 나는 그 은혜로움 앞에 겸손함을 알아간다.

차분하게 내리는 빗소리는 삶 속에서 잊고 살았던 사람들, 하얗게 바래져간 추억 속의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리게 했다. 미웠던지, 고왔던지 굽이치며 흘러가던 길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시골집 토담 위에선 빗방울에 풋풋한 애호박이 손짓했다.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가 닫혀있던 우리 집 대문 활짝 열어놓고, 사랑하거나 하지 않았거나 그들 모두 초대하여, 들기름에 지글지글 지져 낸 애호박전에 걸쭉한 막걸리라도 나누어야 할까보다.

한 그루의 나무,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어느 날 그저 스쳐가는 바람, 파란 하늘 그 곳을 우연히 지나는 한 떨기 구름, 그리고 함께하는 문우들의 인연을 내 가슴 한 켠에 소중히 담아두련다. 칠성 댐에서의 하루까지도.

(문우들과 함께한 문학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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