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향토학자

수건은 인간의 삶 언저리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다. 오뉴월 땡볕에 흐르는 농부의 땀을 닦아주고 전장(戰場)으로 가는 님 보내올 적 담 모퉁이에 돌아서서 아낙의 설움을 닦아주던 수건이다.

우리의 수건은 이태리 타올처럼 피부를 박박 문지르지 않고 겉으로 흐르는 물기나 땀을 훔쳐내는 정도다. 표면적으로는 액체를 닦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삶의 땟국을 닦아온 게 바로 우리의 수건이다.

시집가는 딸아이에게 친정어머니는 명주로 된 ‘삼팔주 수건’을 챙겨준다. 남녀 합방 후 뒷일을 처리하는 것이 삼팔주 수건이다. 낮에는 여섯 마당을 벌이고 밤이면 몸을 팔던 사당패도 삼팔주 수건은 챙겼다. 보드라운 화장지가 없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시골장터에 유랑극단이 들어오면 공연을 알리는 스피커가 “꼭 손수건을 챙겨 오라”고 당부하였다. 눈물 없이 감상할 수 없고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다는 멜로 드라마의 이미지를 이렇게 전달하였다.

서양에서도 수건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손수건은 긍정적 역할보다 부정적 역할을 하는데 더 많이 등장하였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는 손수건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죽음에 이른다. 얼굴색이 검은 무어인 오델로 장군은 명가의 딸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는다.

주위에서는 이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오델로의 의처증은 깊어가고 부관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아내와 이아고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다.서양에서 ‘하얀 손수건’은 이별을 뜻한다. 유신시절, 유행하던 ‘하얀 손수건’은 대학생들의 답답한 가슴을 달래주던 애창곡이었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 때의 눈물자국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그래서 여인에게서 하얀 손수건을 받으면 헤어짐을 암시했다. 여자는 반대로 구두를 받기 싫어했지만...하얀 수건은 또 항복을 뜻한다. 항복의 뜻으로 흰 수건을 총부리에 달아 들면 일단 그곳에서의 전투는 끝이 난다. 백기(白旗)를 든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그 백기는 운동경기에도 이어진다. 권투에서 승산이 없으면 타올을 던진다.

그러나 성녀 베로니카는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다.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다 쓰러지는 예수의 얼굴을 베로니카는 수건으로 감싸준다. 십자가의 길 여섯 번째 장면이다. 수건은 인간의 고통 슬픔을 어루만져 주며 동서고금의 생활사와 궤적을 함께 했다. 충북도 교육감이 옥천 모 중학교를 순방한 후 이 학교 교감이 고민을 하다 결국 투신자살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교감의 자살은 심한 모멸감, 인터넷 상의 논란 등 복합적 요인이었지만 그 원인의 중심에는 이른바 ‘화장실 수건’ 사건이 단초가 되었다. 화장실에 수건이 없어 교육감이 손수건으로 닦은 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나. 그것은 약간의 결례 정도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한 불경죄는 아니다.

오델로의 비극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이 되살아 나는 것만 같아 찜찜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수건이 뭐길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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