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승진제도’와 교장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
교사들 ‘찾아가는 교육감실’ 운영개선 목소리

지난 6일 김성웅 옥천여중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대립으로 치닫던 교육계 내분이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도교육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사태가 진정되기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분위기다. 전교조도 도교육청이 납득할 만한 후속대책을 내놓는다면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을 눈치다.

김 교감의 자살동기나 배경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학교를 방문한 교육감을 영접하는 과정에서 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과잉영접 논란이 언론에 확산되면서 글이 게재된 배경을 추궁받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게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전말이다.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김천호 교육감은 지난 9일 교육가족에게 보낸 서한문을 통해 “본인의 부덕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며 “우리 교육가족 모두는 이번 일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슬기와 지혜를 모아 나가자”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같은 날 전교조 충북지부도 성명을 내고 김 교감의 자살 이면에는 교육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학교장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학교 운영과 과잉충성이라는 구시대적인 관행 등의 개선을 요구했다.

교육계의 왜곡된 승진제도가 문제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과잉영접이 단초가 됐지만 이면에는 교육계의 뿌리깊은 왜곡된 승진제도 때문이라는게 교사들의 중론이다. 교사의 승진제도는 교사, 교감, 교장의 수직적 체계다. 이같은 승진 위주의 체계는 승진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교사의 전문성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력과 근무평정, 연구, 가산점으로 이뤄지는 승진평정도 문제다. 근무평정제(이하 근평)는 교사의 학습지도 능력을 따지기보다 관리능력 평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평정 자체가 교장과 교감이 주도록 돼 있어 이들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따라서 승진을 바라는 교사들은 근평을 주는 교장과 교감의 눈에 들기 위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잘 보이려고 노력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평가 결과의 공정성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교사에 대한 근평은 교장이 50%, 교감이 50%를 주고 교육청에서 조정점수를 준다. 교감은 교장이 50%, 교육청이 50%의 점수를 준다. 하지만 교육청에 주는 점수는 교장의 의견이 대부분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교사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수직적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해당 학교의 요청으로 교장을 초빙할 수 있는 ‘초빙교장제’가 96년부터 도입됐다. 교육청 소속 학교의 10% 이내에서 교장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학부모 등이 원하는 교장을 초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 도내에는 6개 초등학교에서 초빙교장을 임용요청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추천이 능력보다는 학연이나 지연에 의해 좌우되고 교장자격증 소지자에 한정돼 있어 사실상 현 학교장이 임기를 마친 뒤 임기연장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장의 권한이 막강해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학교 운영 우려
교장은 인사는 물론 학교 예산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내에서는 권한이 막강하다. 일부 교사들은 이를 두고 ‘제왕적 권위’라고 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장의 잘못된 권한 행사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교장의 권한이 문제만 되는 것도 아니다. 교장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학습환경이 개선되고,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긍정적인 사례도 심심찮게 전해지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교장이냐에 따라 학교 운영이나 분위기가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건 교사들에게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학교 운영이 교장 개인의 철학과 소신에만 의존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교장의 권한은 막강한 반면 교장 개인이 비민주적이거나 독선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더라도 학내에서 이를 견제하거나 제동을 걸 마땅한 기구가 없다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학교에는 교무회의나 인사자문위원회, 교육과정 위원회 등의 기구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 기구는 협의기구에 불과해 교장의 독선을 견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나마 법적인 심의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가 있다고는 하지만 상당수의 학운위도 형식적인 거수기에 불과해 제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직 교장인 H씨는 “과거에는 교장이 독단으로 학교를 운영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교조 교사들 때문에 학교 운영이 많이 좋아 진 걸로 안다”고 말했다. 전문직 공채 등을 통해 교장에 임명될 수 있는 길이 다양해 지면서 교장의 연령이 점차 낮아져 40~50대 교장이 배출되고 있지만 제도가 이를 따르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교장의 임기는 4년 중임제로 모두 8년이다. 현행 교육법은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평교사로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교장 임기를 마치고 평교사로 근무를 원하거나 실제 근무하는 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들 교장이 갈수 있는 자리는 교장 임기에 포함이 안되는 교육청 관리직 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 교장들은 교육청이나 교육감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간혹 무리를 해서라도 학교 운영이 잘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전교조에 따르면 과잉영접으로 논란을 빚은 옥천여중 정모 교장의 경우 전문직 공채 1기이면서 도내 최연소 교장이다. 정 교장은 임기를 마치고도 정년까지는 5~6년을 더 근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현히 교육청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청이나 교육감에게 잘보이기 위해 과잉영접 의사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부 교장의 과욕은 각종 대회에 참가해 실적을 올리거나 연구학교 선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교사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진을 원하는 교사들이나 교사들의 과반수가 응모에 찬성을 하는 학교도 있지만 상당수의 교사들은 학생지도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연구학교 선정을 그다지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다는게 교사들의 중론이다.

초등학교 Q교사는 “승진을 바라는 교무부장이나 교감이 있는 학교는 연구학교로 선정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고 업무 부담 때문에 연구학교로 선정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전교조 ‘교장선출 보직제’ 도입 주장
한편 교장에 의한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학교 운영에 따른 폐혜가 늘어나자 전교조에서는 ‘교장선출 보직제’를 주장하고 있다. 찬·반 여론이 비등한 이 제도는 대학의 총장이나 학장 보직처럼 학교 구성원들이 교장을 직접 뽑아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근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장 독단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폐혜를 사전에 막을 수 있고 학내 기구에서 결정된 사항이 곧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등 학교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문제는 교장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행 교장자격증제와 임명 방식을 일부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교장을 선출했을 때 교장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교장으로 선출되기 위해 인기위주의 정책을 펼 소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계의 낡은 관행들은 전교조가 생겨나면서 많이 개선됐다는데 대다수의 교사들은 공감을 하고 있다. 특히 전교조 교사의 활동이 활발한 학교는 학운위 밑에 예산결산소위원회 등을 두고 예산의 편성과 집행 과정이 투명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찾아가는 교육감실 운영 개선 필요성 제기되기도
고 김성웅 교감의 자살 동기가 과잉영접 논란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찾아가는 교육감실’ 운영 방식의 개선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높다. ‘찾아가는 교육감실’은 김천호 교육감의 공약사업으로 학교를 직접 방문해 현장의 애로를 수렴하고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됐으며 지금까지 총 230회가 운영됐다.

이 제도를 평가하는 교사들은 교육청의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찾아가는 교육감실은 당초 취지가 변질되면서 지금은 전시행정의 표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부담을 갖는 영접이 예견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도 없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찾아가는 교육감실의 대상이 된 학교는 교육감 방문 2~3일 전부터 교육청 담당과로부터 건의사항이나 현안과제 자료 제출을 요구받고 교육감이 다녀갈 시간동안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교사들은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교육감 방문에 대비해 학교 현황과 브리핑 자료를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며칠씩 고생해야 하는데다 필요 이상의 준비로 교사들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사는 “교육감 방문에 대비해 학교에서 준비하는 자료들은 학교요람에 다 있는 내용이다.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현안사업이나 건의사항은 직접 구두로 들어도 되는데 굳이 보기 좋게 보고서로 만들 필요가 뭐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지난해 청주의 U초등학교에서는 방문할 계획도 없는 교육감을 위해 교육장과 학운위원장용의 신발장을 새로 만들어 두었다가 일부 교사들이 전교조 홈페이지에 문제를 제기하자 치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

이에 대해 교육청 담당자는 “교육감의 지시로 따로 영접이나 보고서 준비를 못하게 하고 있어 실제로 부담을 주지 않고 있다.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지역 교육계 수장이 학교를 방문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부 교장들이 사전에 조금씩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청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교조 홈페이지에는 찾아가는 교육감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수요자 중심이란 이름의 네티즌은 “청렴하고 열성적인 교육감님의 본 뜻은 이제 퇴색되었다고 봅니다. 학교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일회성 행사 때문에 도내 학교의 모든 교직원이 긴장하고 지역교육청은 중간에서 눈치 행정하느라 죽어날 지경이랍니다. 학교단위 행사로 지역주민과 조용히 치러지는 행사 속에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교육감님 한 번 오신다고 하면 화장실부터 청소하고 교육장과 과장들 몇번씩 확인 오고…”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사들은 대화 참석 대상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학교를 방문한 교육감이 머무는 시간이 고작 10~20분에 불과하고 참석 대상도 교장, 교감, 대표교사 2명, 행정실장, 학부모 대표, 학교위원장이 고작이라는 것. 따라서 일선 현장 교사들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듣고 사기 진작을 위해서는 대표교사로 일부 들어가는 부장교사들을 일반 교사로 교체하고 보다 많은 수의 교사들이 대화장에 참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모 군교육청 관계자는 “도교육청의 지시로 교육감 방문에 대비한 일체의 준비를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교육계 어른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일부 준비도 하고 부담을 느끼는 걸로 안다.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하는 시간도 특별히 바쁜 일정을 빼고는 30~40분 가량은 머무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교육감 방문에 대비해 긴장을 하는 곳은 해당 학교만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교육감이 다녀갈 동안 인근 학교도 초비상이 걸려 교사들이 긴장상태로 하루종일 대기하고 있어 불만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일선 교사들은 교육감이 조용히 학교를 다녀가거나 암암리에 준비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장치를 해 줄 것을 바란다고 한다.

초등학교 C교사는 “교육감의 방문이 일선 학교의 어려운점을 직접 듣는 내실있는 방문이 아니라 선거를 대비한 낯내기 행정이라면 차라리 오지 말던가 아니면 조용히 다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교장출신 교육감이라 일선 학교의 어려움을 잘 헤아려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이 크다. 일선 학교 근무 시절 잘못된 관행이나 구태를 직접 경험했다면 당연히 고치려고 해야지 지금의 교육감 모습은 오히려 그런 구태를 즐기지 않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교육감이 학교에서 지원을 약속하는 예산지원에 대해서도 일부 교사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의 어려움이나 고충을 듣는 자리가 되기 보다는 생색내기용 돈 몇푼으로 잠깐 다녀가는 학교 방문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