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막바지 거친 숨을 토해낼 즈음 충북에선 또 다른 국제행사가 열렸다. 충청대학과 진천군이 공동주최한 ‘세계태권도문화축제 2002’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6월 28일 시작돼 7월 5일 끝났다. 그러나 많은 도민들은 명색이 국제행사인 문제의 이벤트가 언제 어떻게 열렸는지 잘 모른다. 계속된 국가적 대사, 다시 말해 월드컵과 지방선거 서해교전이 여론을 독식한 것이 큰 원인이지만 실은 충북 내부의 문제 때문이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 2002 행사엔 모두 40개국에서 2445명의 임원 및 선수가 참가했는데 이중 외국인은 857명에 달했다. 단순 수치로만 따져도 충북에서 단일 이벤트에 이 정도의 외국인이 찾은 사례는 이 행사가 유일하다. 그런데도 도민들은 언론을 통해 이에 대한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했다. 행사 개막식도 도내 일간지중 유일하게 한빛일보만 사진과 함께 1면에 실었지 나머지는 체육면이나 지방면에 단신으로 처리했다. 월드컵 경기를 유치하지 못함으로써 경기 내내 상대적 박탈감을 곱씹어야 했던 충북으로선 사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오히려 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었다.

행사 평가절하로 얻은게 뭐냐
이런 규모의 국제행사는 해당 자치단체의 입장에선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고 매년 개최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미 다섯 번의 행사를 통해 수천명의 외국인이 충북을 찾았고, 그들은 태권도 못지않게 충북에 대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전시성 행사가 아닌 외국인들이 각종 경기와 시범을 통해 실제 주빈으로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 여운은 농도가 더 짙을 수 있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의 지역홀대에 대해 충청대 신용태홍보처장(공학박사)은 이런 진단을 내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언론에 많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아쉬운 것은 이 행사의 근본 취지가 지엽적인 문제로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큰 행사를 주관하다 보면 약간의 실수와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닌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면 행사의 본말이 전도될 수 밖에 없다.
올해에도 숙박, 통역, 행사 진행상의 일부 문제들만 언론에 집중 보도되는 바람에 일반인들에게 행사의 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물론 진행상의 미숙함은 솔직히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것 때문에 행사 전반이 평가절하되면 우리 지역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동개최 기관인 진천군 역시 같은 시각이다. 한 관계자는 “지방의 일개 전문대학이 매년 이 정도의 국제행사를 주관한다는 건 전국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그런데도 거도적인 참여, 지원체계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행사에 대한 관련 기관 및 당사자들의 기득권 갈등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아주 촌스러운 발상이 아닌가. 관계자들이 한번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볼 필요가 있다. 대학 교직원들이 행사에 대거 동원되다보니 일부 불만도 있더라. 앞으로 이 행사를 통한 학교 및 지역홍보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고, 특히 지방정부가 공동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 언론이 무관심했던 것과 관련, 일각에선 진천군의 기자실 폐쇄에 따른 역반응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억지춘향식의 행사 지원
충청대가 깃발을 올린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부터 충북도 등 행정기관의 협조 및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사실 이만한 국제행사에 관할 행정기관이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그러나 올해도 공동개최측인 진천군을 제외하곤 강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했다. 올 행사 경비는 총 9억6000만원 정도로, 진천군이 6억원 충청대는 1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그 외 국비 도비 시비(청주시) 지원이 각각 3000만원이었고 나머지는 선수단들의 참가비(6000만원)와 협찬금으로 충당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충북도와 청주시의 행사관여는 면피용이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감지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도와주자니 아깝고 무관심하자니 여론이 부담스러운 모양새인 것이다.<별도기사 참조>
충청대는 태권도를 특화시켜 학교와 지역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각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학교가 운영하는 태권도문화사절단(단장 오노균교수)은 세계를 무대로 태권도문화 보급에 앞장섬으로써 관심의 표적이 됐다. 최근엔 아프리카(4월)와 러시아 사하공화국(6월)에서의 활동이 중앙방송에까지 장시간 소개될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충청대 한재석기획처장(환경공학과 교수)은 “외국 선수들이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대하는 자세는 아주 특별하다. 마치 종교인들이 해당 종교의 성지를 방문하는 것만큼이나 각별한 감정을 갖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당연시하고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이 태권도에 갖는 신념을 충북 더 나아가 한국을 위한 순기능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행사에 대한 우리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이미 국제행사로 정착된 이상 그 효율성의 배가는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서로 기득권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원종지사 정종택학장의 파워게임 부산물?
이유 있는 태권도문화축제 행정기관 홀대

충청대가 주관하는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대한 행정기관의 홀대는 엉뚱하게도 정치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그 주역들은 다름아닌 이원종지사와 정종택 충청대학장이다.
행사의 모체는 충청대이지만 충북도가 주체 세력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3년전부터 구체적으로 제기됐었다. 국제행사의 성격상 우선 행정기관의 도움이 없으면 성공적 개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의 와중에 양측간 미묘한 기류가 형성됐다. 두 사람 사이의 정치적 이해득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지난 98년 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도지사에 당선된 이원종지사는 임기중 줄곧 재선을 도모해 왔고, 결국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목적을 거뒀다. 반면 정치에서 학계로 둥지를 바꿔 튼 정종택학장은 지방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호시탐탐(?) 정계로의 귀소(歸巢)를 엿보고 있었던 것. 때문에 이지사의 입장에선 정학장이 아무래도 눈에 걸렸다. 충청대의 세계태권도문화축제는 누가 뭐래도 정학장의 작품이다. 쉽게 판단해서 만약 충북도가 이 행사를 지원한다면 기껏 내돈을 쓰고도 향후 정적이 될 수 있는 상대 정학장을 돕는 꼴밖에 안 된다. 그동안 역대 대회 때마다 충북도의 예산지원을 놓고 서로 갈등을 빚었던 전후 과정엔 바로 이같은 이유가 기저에 깔려 있다. 2년전 16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에 많은 생채기를 낸 정학장이지만 여전히 지역정계에선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 때도 이원종지사가 한나라당으로 옮긴 후 민주당과 자민련은 정학장을 후보로 옹립하기 위한 모종의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관계자는 “만약 그 때 본인이 강력한 의사만 표시했더라도 후보로 내세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둘은 원래 가까운 사이

이지사가 정학장을 가장 의식한 시기는 선거 1년여 정도를 남겼을 때부터다. 도지사 선거구도를 청주권과 비청주권의 대결로 몰아붙이는 지역여론이 확산되자 이지사로선 국회의원 3선에다 장관 5회의 화려한 경력으로 청주권을 대표하는 정학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각종 루머까지 양산됐는데, 한번은 둘이 만나 서로 오해를 푼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놓고 나타난 이같은 관계에 대해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한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충북도의 한 관계자는 “그 문제는 너무 민감한 사항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몹시 부담스럽지만 솔직히 말해 맞는 말이다. 당시 실무선에선 행사 및 예산지원 문제로 아주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가 끝난 마당이라 모든 것을 재검토할 필요는 있다. 두 사람이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역발전을 우선 생각한다면 무슨 큰 문제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두 사람은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한 사람은 정치인(정)으로 또 한 사람은 관료(이)로서 돈독한 인연을 맺은 것이다. 특히 이지사가 91년 청와대 행정비서관으로 발탁될 때와 92년 관선지사로 내려 올 때 정학장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한 때 ‘청마회’라는 계모임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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