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범종 인간문화재 원광식씨
43년간 7000여구의 범종 제작

지난 4월 5일 양양 지역의 산불로 낙산사 동종(銅鐘·보물 제479호)이 소실되면서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68년 보물로 지정된 이 동종은 높이 158㎝, 입지름 98㎝의 크기로 조각 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매우 아름다워 한국 범종의 걸작으로 꼽혀왔다.

특히 이 동종은 조선 초기 공장 체계를 엿보게 하는 제1급 자료이면서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동종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범종을 연구하는 데도 매우 긴요하게 취급되는 자료여서 소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동종 소실로 복제품 제작 여부가 관심을 모으면서 주목받은 이가 진천군 덕산면에서 종을 제작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범종 인간문화재 원광식(63)씨다.

   
문화재청에서도 원씨에게 낙산사 동종의 복제품 제작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제작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원씨에 의해 동종이 부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씨가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데는 범종 제작 분야의 인간문화재란 점도 있지만 지난 2월 국립중앙박물관 과학기술연구실과 함께 6.25때 불에 타 파손된 통일신라 시대 선림원종(鐘)을 전통 방식인 ‘밀랍 주조’ 기술로 복원해 냈기 때문이다.

선림원종 복원에 사용된 기술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전승되어 오다가 일부 문헌에만 남아 있는 ‘청동 밀랍 주조’ 방식이다. 원씨가 신라종 재현에 매달린지 꼭 10년만에 거둔 결실이다.

이 연구결과는 그간 학계의 과제였던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 주물과 복원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1940년 경기도 화성의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원씨는 22살때인 1963년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8촌형(작고)인 원국진씨가 성북동에서 운영하던 성종사에 들어가면서 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성종사에서 주로 제작하던 종은 교회종과 학교종이었다. 종을 만드는데 필요한 청동과 철을 구하기 어려워 6.25때 쓰다 버린 탄피 등을 주워모아 종을 만들었다. 이때만해도 종이 있는 사찰은 드물었다. 일제때 일본군이 무기제작에 사용하기 위해 사찰의 종을 모두 뺏어갔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없는 사찰로서는 종을 만들 엄두조차 못내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60년대 후반부터 사찰에서 조금씩 종 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했고 70년대부터는 대형 종 제작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종 소리는 참 신비롭습니다.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온갖 근심 걱정을 잊게 되죠”

소리에 반해 종 제작에 점차 빠져든 원씨는 1968년 종을 만들다가 쇳물이 튀어 한 쪽 눈의 시력을 잃기도 했지만 종 제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한 쪽 눈을 잃고 나서 종 만들기를 포기한다면 한이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심히 종 만드는데 매달렸죠”

범종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인 1972년에 8촌형이자 스승이었던 원국진씨가 타계하자 그는 1973년 성종사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종 연구에 매달렸다. 1976년엔 관련학자 등과 함께 범종연구회를 만들어 종의 조직과 분석, 음향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종을 연구해 나가면서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라종이었다. “고려시대 종은 음향을 구조적으로 맞추지 못해 신라종에 비해 소리의 신비감이 떨어집니다. 조선시대 종은 중국과 일본의 기법이 혼합돼 자기 소리를 못냅니다. 하지만 신라종은 달랐어요. 그 소리가 정말 신비로웠죠”

이 때부터 그는 신라시대 종 제작의 비밀을 찾아 내기 위해 밀랍 주조법에 매달려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과 고운 진흙 돌인 이암(泥巖)을 이용하는 ‘청동 밀랍 주조’ 방식은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전승되어 오다가 사라진 방식이었다.

밀랍 주조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원씨는 주조법의 비밀이 종의 틀을 제작하는 흙의 성분에 있다고 보고 신라의 수도 경주 일대의 흙을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경주 감포지역에서 내·외형틀의 온도·습도·통풍·경도(硬度) 등을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이암(泥巖)을 발견했다.

곱게 빻은 이암 가루를 주재료 삼아 틀을 만들어 청동 쇳물을 주입함으로써 청아한 소리와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신라범종을 복원하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이암은 600도의 열을 가하면 수분이 없어지고 단단해져 표면이 곱게 나옵니다. 열에 강하고 공기가 잘통해 종 제작의 거푸집으로 사용하기에는 그만이다.”고 원씨는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이전 종은 약 327구 가량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탓에 종이 부식되고 깨져가고 있어 타종이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원씨는 복원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원씨는 국내에 남아 있는 종 뿐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와 고려시대 60여구의 종을 복원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그래서 5구의 모형을 떠와 보관중이다. 언젠가는 이 종들도 복원해 볼 생각이다.

그가 43년간 만든 범종은 모두 7000여구나 된다. 서울 보신각 새 종, 충북천년대종 등 20~30t급의 대형 종을 비롯해 국내의 왠만한 주요 사찰의 종은 모두 원씨 손에서 태어났다.

상원사 동종도 이미 원형 그대로 복원해 제자리를 찾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 등 각 자치단체에서 제작을 의뢰한 ‘시민의 종’ 제작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이런 그가 복원에 집념을 보이고 있는 종이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이다. 신비로운 소리의 종으로 유명하지만 더 이상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복원해 보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에밀레종은 대형 주물에다 30년 걸려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복원을 하더라도 3년은 걸려야 할 겁니다. 내 손으로 이 종을 그대로 복원해 종소리가 경주에 다시 울렸으면 한다.”고 원씨는 말했다.

진천군이 조성중인 종 박물관에도 그의 작품 15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신라와 고려, 조선의 범종 13점과 그동안 수집해온 외국종 5점은이미 기증했다.

종 박물관이 완공되면 그동안 이끌어오던 범종학회를 이 곳으로 옮겨와 종 연구를 뒤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연구회가 자리 잡을때까지 지원하고 앞으로는 후원역만 맡을 생각이다.

그는 “국내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에밀레종을 전통밀랍방식으로 복원하고 일본에 건너간 신라·고려시대 종을 복원하는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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