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하자마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일상에선 쉽게 치부될 수도 있는 하찮은(!) 일 때문에 여론의 치도곤을 당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과 관료의 한계를 확연히 보는 것같아 일견 재미있다. 그의 구설수는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어느날 갑자기 얻게 된 권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에 우선 안타까움이 든다. 똑같은 언행도 정치인이 할 때와 관료가 할 때는 뉘앙스가 다르다. 특히 조직의 구성원(국회의원)과 조직의 책임자(서울시장)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를 동일하게 착각하는 바람에 시민과 네티즌들의 성질을 건드렸다.
부역(賦役)이라는게 있다. 사전에 나온대로 국가나 공공기관이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勞役)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더러 쓰였는데 지금은 듣기가 힘들어졌다. 부역이 가장 기승을 부리던 때는 6, 70년대다. 군사정권하의 권위주의 시대여서 국민들이야 시키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마을의 도로를 닦고, 농수로를 치우고, 새마을 회관을 짓는 일들이 주로 이 부역으로 해결됐다. 아무래도 수입과 무관한 강제노역이다 보니까 심정적으로 힘들 수 밖에 없었고 어쩌다 부역 동원령이라도 받게 되면 귀찮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지겨웠던 것은 도로를 닦는 중노동이다. 학생 신분으로 종종 부친을 대신해 동원됐던 필자의 기억으론 군수의 지방순시 땐 예외없이 혹독한 부역이 떨어졌다. 군수가 지나갈 도로를 보수, 새 자갈을 깔고 잡풀을 제거하는 일이다. 여름철 폭우라도 내려 도로가 훼손되면 부역의 강도는 배로 커진다. 아직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삽과 곡괭이를 다루었던지라 지금 생각해도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얼마나 지겨웠으면 그 때 많은 사람들은 부역을 ‘빌어먹을 짓’이라고 해서 ‘비럭질’로 불렀다. 당시 부역을 하면서 빈번하게 들었던 얘기는 “더러워서 나도 군수하겠다”는 일종의 언어적 배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땐 시골에서 제법 똑똑하고 의젓하다 싶으면 “넌 커서 군수감”이라는 말이 으레 건네졌다. 물론 어린 아이와 그 부모한테는 최고의 덕담이었다. 이렇듯 군수는 감히 범접못할 높은 위치에 있었다.
얼마전 오효진 청원군수가 본지를 방문, 아주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평소엔 본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쪼르륵 달려 와 반갑게 손을 잡던 마을 주민들이 군수가 된 후론 먼 발치에서 바라 보는 등 굉장히 어렵게 대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과거 힘들게 비럭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만나 볼 수 있었던 ‘우리 군수님’인데 어찌 외경(畏敬)스럽지 않겠는가. 군수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주민들의 바뀐 행동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그를 받아들이는 측의 자세가 더 궁금한 것이다.
6. 13 지방선거를 통해 많은 자치단체장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자신의 손아귀에 갑자기 얹혀진 권력, 권위에 생경한 사람도 있을테고 오히려 이를 여한없이 만끽하려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권위는 조직의 구성원, 즉 다수가 인정할 때만이 생명력을 갖는다. 그리고 그 권위에 대한 정당성이 주변인들로부터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권력도 생기는 법이다. 이것을 모르고 설치면 기다리는 건 탈선과 각종 비리, 임기 말의 추한 몰골이다. 이런 말이 있다. 새 자치단체장들을 향한 일종의 잠언이다. 취임 초기 수행원이 승용차 문을 열어 줄 때 느끼는 어색함과 부담감이 임기 말까지 계속된다면 그는 성공한 자치단체장이라는… 충북의 신임 자치단체장들은 제발 이명박의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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