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빚어낸 괴소문인가, 고질적 개발비리인가' 관심 증폭
청주시 관계자 ‘터무니 없다’는 주장 불구

풍치지구로 지정돼 고층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에 대한 도시계획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로비자금이 청주시로 유입됐다는 ‘비자금 괴담’이 청주시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해당지역은 풍치지구가 해제되면서 현재 중·대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데다, 지난해 6월 분양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루머가 나도는 등 당시 수사기관에서도 안테나를 곤두세웠던 터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의 ‘단정론’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입질에 오르내리는 당사자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이같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도시계획 재정비가 개인의 의사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청주시의 경우 당초 해당지역을 오히려 공원으로 묶으려 했으나 토지주(순천 박씨 문중)의 반발로 일부는 묶고 일부는 풀어주는 식의 윈윈(Win-Win) 방식으로 매듭을 짓게 됐다는 것이다.

개발업자도 “입주가 마무리 될 때까지 만질 수 있는 현금은 시공사로부터 관리비조로 받는 월 3000만원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런 거액의 자금을 만들 수 있겠느냐”며 “더구나 기반시설 비용으로 50억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 실질적인 이익도 기대치에 못미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설명처럼 ‘비자금 설’이 터무니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면 끊임없이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다. 도시계획 재정비와 관련한 매머드급 비리사건인지, 아니면 이해관계에 따른 음해 시비인지 안갯속 같은 소문의 진앙을 추적해 봤다.

   
▲ 풍치지구 해제와 관련해 로비설이 떠돌고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육성준기자
청주시가 민원을 유발시켰다?
우선 시중에 떠돌고 있는 ‘로비자금설’은 시작부터가 잘못 됐다. 문제가 되고 있는 청주시 비하동 강서초등학교 뒤 현재 계룡 리슈빌 건설현장을 ‘청주시가 당초 5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일반주거지역 내 풍치지구로 지정된 상태에서 풍치지구 지정을 해제하려 했다’는 소문과 달리 처음에는 오히려 일반주거지역 내 풍치지구를 ‘자연녹지 내 공원시설로 지정해 규제를 강화하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주시는 2011년을 기한으로 하는 도시관리계획 재정비가 시작된 2001년 12월, 주민공람을 앞두고 강서초등학교 뒤 두 곳의 구릉지역 약 2만여평을 자연녹지 내 ‘공원시설’로 지정하는 기본계획안을 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 때부터다. 순천 박씨 중시조 가운데 한 명인 박춘번(의병장 박춘무 장군의 친동생)의 후손들인 순천 박씨 판서공파 종친들이 청주시에 5~6건의 민원을 접수하고 재산권 행사를 요구하며 시 관계자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친들은 종중 땅인 해당지역이 5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풍치지구로 지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풍치지구 해제를 요구해 온 마당에 오히려 이 지역을 공원으로 묶으려는 것은 재산권을 더욱 침해하는 것이라며 민원제기와 함께 연일 시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민공람과 현장실사 과정에서 이미 수차례에 걸친 개발행위 허가로 풍치를 잃어버린 왼쪽 1만여평은 풍치지구 지정을 해제하고 박춘번의 묘와 사당이 있는 오른쪽 8000여평은 보존녹지로 묶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시 도시계획위원회와 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3년 12월 자연녹지내 공원지역으로 결정·고시된다. 과정만 놓고 보면 청주시는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주거지역 내 풍치지구를 공원으로 지정하려다가 토지주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 셈이 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청주시가 해당 지역을 공원으로 규제를 강화하려 함으로써 오히려 민원을 유발시켰고, 이로 인해 결론적으로 풍치지구 해제를 유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업무를 관장했던 청주시 관계자도 “현장 확인 결과 풍치지구를 해제하게 된 왼쪽 지역이 이미 난개발로 경관이 훼손된 상태에 있어서 나머지 한쪽이라도 확실히 보존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한쪽은 막고 한쪽은 풀었다”고 설명하고 있어 이미 건축행위가 상당히 진행된 지역을 공원시설로 지정하려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원지정 시도는 불붙기 시작한 주민반발에 기름을 붓는 상황을 유도한 꼴이 되었고 그 진의를 의심케 하는 수수께끼로 남고 말았다.

시의원 개입설은 부풀려진 듯
시중에 떠돌고 있는 소문 가운데 진진한 추측을 낳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가설은 청주시의회 의원들이 풍치지구가 해제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회 관련설’이다. 5,6대 시의원을 지내며 도시건설위원회에서 활동한 박상준(가경) 전 의원을 비롯해 7대 의회 상반기 도시건설위원장으로 활동한 박승순(가경)의원, 역시 7대 의회 소속인 박종성(강서1), 박종룡(산미분장)의원 등이 모두 순천 박씨이기 때문이다.

주민공람과 공청회에 이어 의회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규제 강화 쪽에 무게를 뒀던 시의회가 결국은 ‘일부 해제’로 의견을 급선회한 뒷배경에 종친의원들의 활약(?)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가운데 박종성의원은 같은 교리공파지만 민양공파로 갈라지고 박승순, 박종룡의원과 박상준 전 의원 등 해당지역에 시조묘와 사당이 있는 교리공파 내 판서공파 계열이다. 그러나 당시 도시건설위원장이었던 박승순의원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선대 산소가 있는 신성한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풍치지구 지정을 유지하거나 공원시설로 묶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종성의원도 “박상준 전 의원을 포함해 의원들의 생각은 보존 쪽에 무게를 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원 개입설을 부정했다. 또 당시 청주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으로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 역할까지 담당했던 유성훈의원도 “당초 시의회는 문제의 장소가 중부고속도로 옆으로 청주의 초입이라는 점에서 모두 보존녹지나 자연녹지로 묶는 방안에 무게를 뒀지만 현장 답사 결과 지금의 아파트 건설현장이 잇따른 개발행위 허가로 소나무 숲 등 경관이 이미 훼손돼 있어 풍치지구를 유지할 필요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고 풍치지구 해제 의견을 제출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청주시의회는 2003년 2월 “이미 훼손된 지역은 보존가치를 상실한 바 기존 주거지역으로 환원하고, 재실(사당)이 있는 지역은 보존녹지로 검토하라”는 의견서를 청주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어 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와 재공람을 거쳐 입안이 확정된 도시계획은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통과한 뒤 2003년 12월 결정 고시됐는데, 현재 아파트 건설 현장은 예상대로 풍치지구가 해제되고 나머지 지역은 보존녹지가 아닌 자연녹지에 근린공원시설로 지정된 것이다.

현지 땅값은 3년새 3배 정도 올라
그렇다면 30억원, 혹은 6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이 청주시로 유입됐다는 괴소문을 낳고 있는 현지의 땅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세간에는 땅값이 20배나 폭등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최근 3,4년 동안 오른 땅값은 약 3배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로비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지목을 받고 있는 아파트 개발 시행사 L산업개발이 땅을 매입한 시점은 청주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2003년 4월)를 거치고 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2003년 11월)를 앞둔 2003년 6월 경으로, 도시계획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사고 있는 부분이다.

당시 L개발이 박씨 종중토지 8900평을 사는데 지불한 돈은 대납한 세금을 포함해 75억4000만원 선으로 평당 가격은 85만원 정도다. 현재 이 일대 토지가는 약 16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약 2배 정도가 오른 셈이다.

그러나 풍치지구가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떠돌았던 2001년, 역시 L산업개발이 다른 토지주로부터 사들인 종중토지 인근의 1800평은 평당 50만원 선에 거래됐다. 결국 최근 3,4년 사이 이 일대의 땅값은 3배 정도나 뛰어 풍치지구 해제에 따른 이익을 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주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토지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4층까지만 집을 지을 수 있는 풍치지구는 거들떠 보는 사람도 없었다”며 “다만 빌라업자들이 원룸을 지으려 주변을 기웃거리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L산업개발은 앞서 빌라 건설용도로 사들인 종중토지 인근 1800평을 포함해 모두 1만여평의 대지에 계룡건설을 시공사로 2004년 5월 아파트 건축허가를 득해 480세대를 사전 분양하고 2006년 9월을 준공 목표로 공사를 벌이고 있다.

개발사 이익은 86억1000만원 선
땅값도 땅값이지만 4층 이하의 건물만 지을 수 있는 땅이 15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환원된 것은 충분히 ‘특혜’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L산업개발 김 모(48)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누구라도 의혹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처럼 거액이 오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2006년 9월 입주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챙길 수 있는 총이익금이 86억원에 불과한데 어떻게 수십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5월 35평형에서 59평형까지 480세대를 분양하면서 들어온 분양수익금이 1031억원에 이르지만 부가세를 빼면 975억원대로 줄어들고, 통상 10%를 시행사의 몫으로 볼 때 90억원 이상이 들어와야 하지만, 비하동 현장의 경우 완충녹지 조성, 도로개설, 확·포장 등 기반사업비로 49억원이 들어가는 등 소요비용이 많아 시행사 수익은 86억원 정도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돈은 입주가 마무리된 상태에서 지급되고 현재 L개발이 공동 사업자인 S개발과 공동으로 지급받고 있는 관리비는 월 3000만원 정도로 직원 월급 주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 김대표의 설명이다.

17년 동안 종합 건설사 등에서 개발사업을 담당하다 3년 전 비하동 현장을 시작으로 직접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김씨는 “전국을 다니며 개발사업에 참여해 봤지만 청주만큼 힘든 곳이 없다”며 오히려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청주시에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설과 관련해서도 2004년 5월 분양시점에 집중적으로 소문이 퍼져 검찰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러나 1년이 지난 상황에서 다시 로비자금 설이 나도는 것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는 바는 없지만 그냥 과정에 대해 문제 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본다”며 담담하게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무원 간 내분이 진앙일까
‘공원용지로 시에 헐값에 팔릴 수도 있었던 땅이 고층 아파트 부지를 지을 수 있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모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혹을 가질 수 있다’는 김씨의 말처럼 거액의 로비자금이 오가지 않았다면 끝없이 고개를 드는 소문의 진앙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주변의 추측은 다양하다. 공사가 원만히 진행되지 않은 인근 개발업자의 모함설을 비롯해 종친간 내분을 의심하는 설까지 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은 결국 공무원들의 내부갈등에서 소문이 증폭됐다는 것이다.

도시계획 부서는 다른 건축, 토목직에 비해 유난히 민원이 많아 한마디로 말해 골치가 아픈 자리지만 모든 개발과 건축 등 관련 업무에 앞서는 원초적 부서로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꽃 튀는 자리싸움을 벌이게 하는 선호부서이기도 하다.

특히 시정을 좌지우지하는 시청 내 실력자(?)들은 도시계획 부서에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3~4년만 일하면 무서워서 일하기가 어렵다. 일도 모를 때 하는 것이다”라는 한 관련 공무원의 얘기를 들어보더라도 도시계획 관련 부서가 이래 저래 오래 머무르기에는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6월1일자로 신설 재난안전관리과로 자리를 옮긴 담당(계장) 이 모씨는 담당 계의 차석을 포함해 담당(계장)까지 10년 정도를 같은 업무에 종사해 한마디로 도시계획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우다.

말많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구설수가 당혹스럽지만 한 점 부끄러운 부분이 없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주민공청회와 의회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의 다중 심의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허튼 짓을 할 수 있겠냐”며 “밑바닥에서 시작해 도시계획 관련 박사학위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내가 한 일을 책으로 내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1년 전에 불거졌던 특혜시비와 로비자금 의혹이 또 다시 재현되며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과 관련해 이제는 ‘진실게임’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더라’식의 풍문으로 상처받는 피해자를 만들기보다는 진실을 낱낱이 밝혀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청주시내 한 사회단체에서도 지난해 5월경 행정기관에 행정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등 실체에 접근하려 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한계에 봉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사업무를 맡았던 시민단체 관계자 B씨는 “자연녹지나 풍치지구에서 해제된 내역에 대한 행정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등 자료수집 활동을 벌였지만 내막을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 문제가 다시 공론화되고 있는 만큼 청주시에서 먼저 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역 언론들도 수차례 이 문제에 접근했지만 정작 보도에 이른 매체는 없어 역시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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