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했다. 요즘 지역에서 소위 ‘말 발’이 서는 인사들은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 벌써부터 몸다는 예비 후보들의 발걸음이 뻔질나기 때문이다. 특히 시.군 자치단체장을 목표로 뛰고 있는 인사들은 지역별 조직구축과 함께 이를 실제적으로 리드할 현지 책임자를 선점하느라 상대와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 주말 청원군의 K씨는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내년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지역의 한 인사가 부인을 동반하고 불쑥 찾아 온 것이다. 이 인사는 바로 며칠전에 K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 줄 것”을 간청했다가 그로부터 정중한 고사를 받았던 처지. “다자고짜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출마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 오는 바람에 황당했다. 선거판에 뛰어 들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벌써 여러 사람이 다녀 갔다.” 그동안 각종 활동으로 지역에 잘 알려진 K씨는 “내가 말을 선뜻 들어주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까지 동원, 접근해 오더라”면서 아주 곤혹스러워 했다.
지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S씨의 경우는 좀더 점잖은 케이스다. 그 역시 예비후보로 거론되는 모 인사로부터 최근 계모임 결성을 제의받고 정중히 거절했으나 다시 며칠 후 “식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추가 제의를 해와 이 역시 사양했다는 것. 다른 인사로부터도 부탁을 받았다는 S씨는 “사업관계로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 선거판에 뛰어들기가 어디 쉬운 얘기냐”며 고민을 털어 놨다.

“도와 주지 않으면 출마 포기”

이런 현상은 현재 청원군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변종석 전군수의 자격상실로 이미 예비후보 난립현상이 빚어지는 가운데 이들 후보군들이 자신의 출신지별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지역별 인맥을 확보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후보로서 물망에 오르는 한 인사는 “선거는 어차피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냐.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청원군은 후보가 난립될 수 밖에 없고, 때문에 도토리 키재기식의 경합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결국 자기 출신지 외에 지역별로 누구를 책임자로 앉히느냐가 당락의 절대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이곳에선 정당이나 바람현상보다는 ‘조직’이 승패를 좌우할 개연성이 커 현재 너도나도 인물사냥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계에선 이런 현상을 통틀어 통상 ‘짝짓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지역 인사 뿐만 아니라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후보간, 기초.광역의원과 자치단체장 후보간의 이런 ‘연대’가 이미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동안 드러나는 지역구 활동보다는 물밑 조직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한 정당인은 “막상 선거전이 임박해 오면 이런 조직 구성에 따른 표의 결집이 대단할 것이다.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바람 현상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승패는 결국 어떻게 조직을 만들고 또 어떤 인물을 쓰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 봤다.

예비후보간 짝짓기 이미 노골화

그러나 이런 조기 과열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만약 내년 선거에 출마할 뜻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활동하는 것이 유리할테지만 정치나 선거는 서두른다고 되는게 아니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보면 오는 연말이나 내년 초쯤 국내 정계에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럴 경우 지금의 정당구조하에서 이루어지는 예비후보간 연대는 성급한 면이 있다. 아직 그런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할 시기가 아니다.” 본인 역시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 인사는 “내년 지방선거의 최대 변수는 정계개편”이라고 내다 봤다.


선거철의 메뚜기냐, 소신의 도우미냐
지방선거 킹메이커에 얽힌 얘기들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후 특정인의 당선을 도운 인사들은 줄곧 여론의 도마위에 올려졌다. 때에 따라선 해당 자치단체의 막후 실세로 인식됐던 것이다. 국가 정권이 바뀌면 당장 공기관의 썰물 현상이 나타난다. 전임자의 그늘에서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는 대신 새로운 인물들이 전면으로 부상한다, 지방선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일단 당선된 인사의 측근들은 주변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이들은 해당 차치단체장의 공관이나 사택을 “프리 패스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간혹 특정 사업과 관련 특혜의혹까지 불러 일으킨다. 이 때쯤되면 통상 사정당국으로부터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자치단체장이 바뀌고 나면 지방건설업계의 판도가 바뀐다. 예를 들어 주병덕 전 지사시절엔 Y, B, H 업체가 주류로 나섰다느니, 이원종지사 임기땐 S, Q, T업체의 공사수주가 수직상승했다는 식의 구설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고 의심하지만 그 진위여부는 알만한 사람들(?)만 안다.
현재 도내 지방선거의 공인된(?) 킹메이커만도 여러 명이다. 그 중에서도 K, L, C씨 등은 98년 선거 때 맹활약을 보여 내년 선거에서도 역할할 공산이 크다. 지난번 선거에서 모 자치단체장이 문제의 킹메이커를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한 뒷얘기는 지금까지도 종종 사석에서 회자될 정도다. 이들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비선(秘線)으로 활동하며 해당 자치단체장의 시책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전국적으론 종종 이들의 탈선이 큰 문제가 되는데 대부분 특혜성 사업에 연결고리를 맺는 경우다. 때문에 주변에선 “이들이 지방자치를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를 의식해 DJ는 가신 출신은 절대 공직에 임명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지만 한광옥씨를 민주당 대표에 앉히는 등 스스로 약속을 깼다. 이들은 스스로가 하기 나름에 따라 선거철의 게걸스런 메뚜기도 될 수 있고, 지방자치 발전의 도우미도 될 수 있다.
/ 한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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