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건진 홍명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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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건진 홍명희 생가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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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수명(山紫水明)한 괴산에는 명승경관 및 문화유산이 지천이지만 이중 동부리 450-1번지에 있는 벽초 홍명희의 생가와 제월대 고가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다. 동부리 고가는 건축학 적인 면에 있어서 중부지방의 전형적 양반가옥이라는 점과 더불어 괴산의 3.1운동을 모의한 역사적 장소다.

그러나 동부리 고가는 이런 건축학적인 측면보다 소설 ‘임꺽정’의 산실이었다는 문학사적인 측면이 더 큰 부가가치를 띤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 ‘임꺽정’은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시발점이다.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치고 ‘임꺽정’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소설 ‘임꺽정’이 오랜기간 판금조치를 당했을 때에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름아름 영인본을 구입하여 읽었다. 이것은 문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공개된 비밀’이었다.

소설 ‘임꺽정’은 가히 토속어의 사전 역할을 한다. 요즘 잘 쓰이지 않는 말들이 그 안에는 무진장 저장되어 있다. 우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었나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대하소설의 교범 격인 ‘임꺽정’은 이데올로기의 멍에 속에 묶여 반세기나 사장되었다.

스님이 미우면 바랑도 밉다고 했던가. 벽초 홍명희가 월북하여 북한 부수상을 지내는 통에 괴산의 홍명희 고가는 금단의 구역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지난 1984년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46호로 지정되었다가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당시에 C대 J모 교수가 이 집을 매입하려고 하였다가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은 일은 아직도 호사가 사이에 일화로 회자된다.

동부리 고가는 ㄷ 자형 양반가옥이다. 사랑채에서는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었다. 괴산의 3.1운동은 홍명희에 의해 주도되었고 동부리 사랑채는 모의 장소였다. 그럼에도 입을 닫고 살아야 했던 시기에는 이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거나 괴산의 동립운동에서 홍명희를 슬쩍 빼기도 하고 홍모 씨 등으로 어물쩍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모두가 레드 컴플렉스(RED COMPLEX)의 산물이다.

동부리 고가의 역사성 중 또 하나는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이 살았다는 점이다. 금산군수를 지낸 홍범식은 경술국치 후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한 우국열사다. 1천 3백 68평의 대지에 건립된 99칸의 이 집은 1861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듯 하다. 집을 수리할 때 발견된 망와(望瓦)에 옹정(擁正) 8년 무신(戊申) 4월‘이라고 명기된 점으로 보아 1728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망와는 마루 밑 어디에 두었는데 분실했다는 것이다.

집과 더불어 뒤뜰 정원도 훌륭한 건축미학을 연출한다. 자연을 집안으로 가만히 끌어들이는 기법이 출중하다. 아직도 아람드리 느티나무, 은행나무가 고가를 에워싸고 그 아랜 자목련, 밥풀꽃 나무 등이 잡초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홍범식이 자결한 후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 고택의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지난 1997년, 집 주인이 세상을 뜬 후 이 집은 매각과 이데올로기의 벼랑을 오가며 줄타기를 하였다. 만시지탄이나 괴산군에서 이를 매입하여 소설 ‘임꺽정’의 산실로 가꾸기로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벌써 괴산군은 브랜드의 하나로 ‘임꺽정 고추’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 고가는 수리만 잘 해도 훌륭한 문학 기행코스가 된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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