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2천4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楚)나라에 굴원(屈原)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박학강지(博學剛志)한 성품에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문장과 변론에도 뛰어난 당대의 고결한 인물이었습니다.

굴원은 삼려대부(三閭大夫)로서 국사를 함께 논 할만큼 왕의 신임을 받아 주위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러자 그의 유능함을 시기한 주위에서 거짓 말을 만들고 일을 꾸며 참소(讒訴)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끝내는 왕도 그를 멀리하고 결국은 관직마저 빼앗고 맙니다.

굴원은 나라가 혼탁해 지는 것을 보면서 ‘근심에 차다’라는 뜻의 글 ‘이소(離騷)’를 지어 마음을 달랩니다. ‘이소’는 자신의 번민과 국운을 한탄하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대 서사시로 우국충정이 넘쳐 나는 희대(稀代)의 명문장이었습니다.

관직에서 쫓겨 난 굴원은 ‘정설불식(井渫不食)’, 즉 “우물이 깨끗하나 마시지 않는다”고 자신의 불운을 탄식하며 수척한 몸, 파리한 얼굴에 산발한 머리로 하염없이 산천을 헤매는데 강가에 이르자 고기 잡던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 놀라 묻습니다.

“어허. 그대는 삼려대부 굴원이 아니시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그 모습이 되어 예까지 오셨소?” 굴원 대답하되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맑으며 세상 사람이 모두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소(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거세개탁아독청 중인개취아독성), 그 때문에 쫓겨 났다오.”라고 말합니다.

어부, 말을 받아 “대체로 성인(聖人)은 세상이 혼탁하면 물결처럼 흐름에 따르는 것이고 세상 사람이 다 취해 있으면 함께 마시고 취하는 것이지 어찌 훌륭한 재능을 스스로 버린단 말입니까?”하고 안타까이 나무랍니다.

굴원 다시 답하기를 “차라리 장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밥이 될지언정 더러운 풍진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오”하고는 “세상이 혼탁하여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을 말해 무엇하랴. 죽음을 사양할 수 없음을 안다”라는 ‘회사부(懷沙賦)’를 짓고는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집니다.(史記·屈原 賈生列傳)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지만 혼자 깨끗한 삶을 살겠다’는 굴원의 ‘擧世皆濁我獨淸’은 불후의 명구(名句)로 2천 여 년의 시공을 뛰어 넘은 오늘에도 곧게,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이들의 귀한 삶의 좌표가 되고 있습니다.

6월입니다. 온산에 신록 무르익는데 때 이른 더위는 한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시절은 호시절이로되 어제, 오늘 눈앞에 펼쳐지는 우리 사회의 혼탁한 양상을 보면서 “참으로 나라가 어지럽구나”하는 탄식을 금치 못합니다.

도대체 ‘러시아 유전’은 무엇이며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행담도’는 또 무엇입니까.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느라 어수선한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부패를 추방하겠다던 게 언제였습니까.

‘호국 보훈의 달’.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애끓는 유족들의 오열이 목 메입니다. 산 자들은 돈에 눈이 멀고 나라 위해 죽은 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일, 그것이 통일보다도, 국민소득 2만 달러보다도 시급한 국민적 과제임을 우리는 모르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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