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유리조각이 보석처럼 예쁜 것으로 재탄생한 이야기

며칠 전 도종환 시인이 책 한 권을 보냈다. 제목은 ‘바다유리(현대문학북스 刊)’. 이제 막 ‘출생신고’를 마친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동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누구든 시련과 아픔을 거쳐야 빛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몇 년 전, 학생들과 바다에 갔다가 박하색 바다유리를 본 시인은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유리조각이 파도와 바람과 세월에 씻겨 매끄럽고, 예쁜 모습으로 바뀐 점을 예사로 넘기지 않았다. 그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쓸모없는 유리조각이 모든 아픔을 딛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으로 다시 태어난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마침내 이야기 한 편이 만들어졌다. 시인은 이 책을 내놓으면서 사랑에 눈뜨면서 힘들어하고, 세상을 알고 싶어 하다가 상처받고 절망한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월이 상처를 보석으로 만듭니다.” 오랜 세월 살이 깎여나가고 몸이 으스러지는 걸 참아야 비로소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다유리. 이 책에서 ‘나’도 유리 자신이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듣게 된 ‘나’는 형과 함께 어느 날 도시로 나가게 된다. 거기서 우유잔이 됐다 찻잔이 되었다가 다시 술잔이 된다.
어머니가 이미 ‘나’에게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그래야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단다. 물이 담기면 물잔이 되고 차가 담기면 찻잔이 되고 술이 채워지면 술잔이 된단다. 독이 담길 수도 약이 담길 수도 있고, 사람을 기쁨으로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눈물로 주저앉게 할 수도 있단다”고 설명한 것처럼 유리의 운명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침내 조각난 상태로 바다에 던져졌다. 한 순간에 칼날같은 것이 되어 남의 생명줄을 끊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여기서 유리는 절망했다. 그러다가 10년 하고도 훨씬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파도와 바람과 모래에 씻겨 아름다운 바다유리로 변해갔다.
이 책에서 시인이 말하려는 것도 “살아오면서 크게 상처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상처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 상처가 가장 크고 혹독했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시련과 고통없이 살아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동양화가 정경심씨의 잔잔한 그림을 본문 사이사이에 삽입한데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못생긴 모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듯이 시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유리조각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98년 해직 10년만에 진천군 덕산중학교 교사로 복직한 그는 그동안 시집으로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부드러운 직선’, 산문집으로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등을 펴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7회 민족예술상, 제2회 KBS 바른언어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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