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대영제국의 명재상이었던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풍자소설가로도 명성이 높았습니다. 1874년 그가 수상으로 내각을 이끌 때 의회에 출석해 야당인 휘그당 의원과 벌인 설전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회의에서 한 의원이 질문을 퍼붓다가 “수상, 당신, 수의사 맞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순간 회의장은 긴장이 감돌았고 의원들은 웅성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수의사는 웬 수의사야?”

디즈레일리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일어섭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나 수의사입니다. 그런데 의원, 당신 어디 아픈데 없소?” 순간 장내는 폭소로 뒤 덮였습니다. 수상을 수의사로 깎아내려 창피를 주려했던 야당의원은 되레 자신이 '짐승' 이 되고 만 것입니다.

모욕적인 인신 공격에 대한 디즈레일리의 반격은 정치인의 기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재치의 극치였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 의회사의 백미로 전해집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영국의회도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성도, 야유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토론 문화가 정착된 영국에서 의원들은 이성을 잃지 않고 풍자와 해학, 유머 넘치는 익살로 의회를 이끌어 감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둘러싼 국무총리와 경기도지사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지난 번 수도권발전협의회 때 손학규 경기지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감으로써 촉발된 두 사람의 감정싸움은 도를 넘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정치적으로 나는 고수(高手)에 속하고 손지사는 한참 아런라고 깎아 내린 이해찬총리나 “그 사람이 정치는 몰라도 행정이나 경제는 빵점이 아니냐”는 손 지사의 막말은 이들이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렵게 합니다.

아무리 정치적 뿌리가 다른 총리와 지사라고 할지라도 대권마저 꿈꾸는 이들이라면 해야 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있는 법입니다. 하건대 총리와 지사가 마치 ‘맞짱’을 뜨듯 말싸움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국민을 도외시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책을 두고 총리와 지사가 이견을 보일 수 는 있습니다. 선출직 지사이기에 지역 발전을 위해 밀고 당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총리가 누구입니까. 왕정시대와는 다르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총리로서의 대인다운 금도(襟度)가 있어야 합니다. 또 지사는 지사대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입니다.

총리가 비아냥거림으로 아랫사람인 지사에게 시비를 거는 듯한 모습은 윗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손지사 역시 국정을 논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빵점' 운운하는 무례한 태도는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나라꼴이 우습게 되어있다 해도 막가파식으로 마구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가정에 위아래가 있듯이 나라에도 위아래가 있어야 합니다. 풍자나 해학은 그만두고 뼈있는 유머 한마디 구사할 줄 모르는 우리 정치인들의 편협함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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