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은 한국인의 영원한 향수다. 쇠죽 가마솥이 설설 끓는 사랑방 아랫목은 긴 겨울밤을 정담으로 지새는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가마솥은 어머니의 또 다른 분신이다. 이마에 인생 계급장을 서너 개 달은 어머니가 갓 스물 시집와서 흘린 짠지 쪽 같은 눈물을 모두 담으면 족히 가마솥을 채우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지 않았나. 소두 방에서 새어나오는 김은 어머니의 입김이요 한숨이다. 마르지 않은 청솔 가지 아궁이에 삶의 불 지피면서 아들 도시락 싸 줄 쌀알 한 줌은 가마솥 귀퉁이에 숨겨 놓았다.

가마솥은 더디 끓는다. 어머니의 한이 불꽃 되어 아궁이를 달구면 동이 틀 무렵에야 증기기관차처럼 김을 뿜는다. 섭씨 8백도에서 한참 열을 받은 가마솥은 쌀알 보리 알을 익혀놓고 슬그머니 불꽃을 사위여 간다. 그래야만 뜸이 잘 들고 밥이 잘 된다. 어머니의 한 숨은 결국 재로 남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가마솥 문화가 발달한 것은 농경사회 공동체라는 점 때문이다. 함께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일뿐만 아니라 먹거리도 함께 하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밥은 으레 가마솥 몫이었다. 많은 분량의 밥을 지을 수 있고 밥맛이 좋다. 밥맛의 비결은 아마도 고른 열전도에 있는 것 같다. 식사 후 먹는 누룽지와 숭늉은 또 다른 별미 디저트다.

솥에는 삼발이가 있는 솥이 있고 없는 솥이 있다. 흔히 충북을 삼국의 ‘정립지대’라고 하는데 이때 정립은 정립(定立)이 아니라 솥 정자를 쓴 정립(鼎立)이 맞다. 신라, 고구려, 백제가 솥의 삼발이처럼 서 있다는 의미다.

법주사의 철 확(가마솥)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의 거대한 무쇠 솥은 한때 3000 승려의 가마솥 또는 장국을 끊이는데 쓰였다고 한다. 솥이 너무나 커서 장을 끊이던 사미승이 빠져 죽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1915년, 일제가 촬영한 철확의 사진을 보면 풀 섶에 나뒹굴어 있다.

관련 기록에 보면 720년(성덕왕 19)에 조성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이 큰 가마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허기사 소리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도 이 때에 만들지 않았던가. 에밀레종을 만들 당시 ‘봉덕이’의 애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듯 거대한 철 구조물은 어떤 구도정신 없이는 성사가 불가능하다.에밀레종을 불심으로 만들었다면 거대한 가마솥도 정심(鼎心)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마솥에 무슨 마음이 있을까 마는 어머니는 정성으로 밥을 지었고 국도 끓였다. 그만큼 가마솥을 만드는데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괴산군이 세계최대의 가마솥 제작에 자꾸 실패하고 있다. 거푸집이 깨지고 작업 인부들이 화상을 입었다. 무려 4만 명분의 밥을 동시에 짓는 가마솥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역사(役事)다. 지극 정성 없이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면 성공할 확률이 낮다. 그리고 더 무리한 것은 ‘세계최대’라는 콤플렉스다. 조금 작은들 어떠랴. 왜 세계최대만을 고집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큰 가마솥에 담은 어머니의 소박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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