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상 기 파대산업 중고기계 대표

지난 어버이날,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단양 장외나루에서 열리는 제19회 두향제에 참여해 보았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축제가 있지만 한 골짜기에서 열리는 두향제라 유심히 살펴본 즉, 깊은 감동을 받았기에소개하려고 한다.

두향의 성명은 두양 또는 두향으로 불리어 졌다고 전해지고 성은 안씨라고 전해지나 알 수 없으며 조선 중종조 시대의 사람이며 단양 태생이다. 두향은 거문고에 능했으며 난(蘭)과 매화를 사랑했고 퇴계 이 황을 사모하여 메아리 없는 수절로 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본시 기녀가 아니었으나, 다섯 살에 부친을 사별하고 모친마저 열 살 때 사별하여 퇴기인 수양모 아래서 자란 것으로 알려진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는 초탈한 성품과 애민심, 충정 또한 대단했으며 거문고에 대한 상식도 해박하여 듣기를 즐겨했는데, 그때 나이 13세로 기적에 올라있던 두향은 거문고 타기에 능해 발탁되고 이것이 이 황을 모시게 된 인연이 된 것이다.

두향은 퇴계 모시기를 마음속 진심을 다해 이심전심으로 시를 나누고 거문고를 타 업무로 인한 피곤함을 풀어 주었고, 고매인 홍매와 백매를 가져다 심신을 달래 주었다고 전한다.

어느날, 이 황이 경상도로 전근가게 되자 두향은 이 황을 너무나 사모하여 이 황을 모시던 몸으로 기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충절로 신임사또에게 기적에서 이름을 없애달라고 청원하여 기생을 면하였으며 강선대가 내려다 보이는 적성산기슭에 초당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며 퇴계의 건강을 비는 것을 일과로 하던 중, 경오년(1570년) 12월 8일에 이 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 모두가 허망하기에 두향은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그토록 아끼던 거문고를 불태우고 일편단심 사모의 정을 가지며 ‘나의 유해를 남한강이 보이는 강선대 옆에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한 많은 생을 마친 것이다.

현재 장외나루의 강선대 옆에는 두향의 묘가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정성스레 매년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두향을 기려 지은 시 가운데 한편을 소개한다.

孤憤臨官道 고분임관도
頹沙暎紅 퇴사영홍악
杜香名盡時 두향명진시
仙臺石應落 선대석응락
(월암 이광려)

외로운 무덤 관도변에 있고
거친 모래에 꽃도 붉게 피었네
두향 이름이 사라질 때에
강선대 바윗돌도 없어지리라

경남 진주에는 논개가 있고, 강릉 경포대에는 홍장, 평창 진부에는 청심이가 있다면 우리의 단양에는 두향이가 있었다.

두향아 어린 여인아
박명하다 원망치마라
네 고향 너 놀던 터에
조용히 묻혔네
강선대 노는 이들
내 무덤 찾아내려
술 잔도 깃들이고
꽃송이도 비친다기
오늘도 가을나그네

지역주민들에 의해 거행되는 제향행사를 보고 청풍호 굽이굽이 천천히 운전하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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