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병의 산실 자양영당과 화동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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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의 산실 자양영당과 화동강목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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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3>

▲ 자양영당 전경. 우측 건물에 화동강목이 보관되어 있다. 제천시 봉양면 공전리에 있는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성재 유중교가 고종 26년(1889)에 창주정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며, 구한말 유인석이 8도 유림을 모아 창의를 위해 비밀회의를 하던 유서 깊은 곳으로, 1906년에 영당이 세워졌다. ▲ 강당에는 유인석의 글씨로 박약재와 극복재 현판이 선명하게 걸려 있다.
여기에는 주자와 송시열·이항로·유중교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뒤에 유인석·이직신의 영정도 봉안되어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건물구조는 목조기와집으로 전면 3컨, 측면 2칸이며 앞에는 툇마루가 있는 팔작집이다. ‘

▲ 화동강목판각 박약재’‘자양서사’‘극복재’‘자양영당’의 현판이 있고, 특히 「화동강목」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화동강목」판목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인 중암 김평묵과 성재 유중교가 중국 송·원대의 사적과 고려의 사적을 합기한 것으로 3강 5륜에 대한 예의와 풍습을 백성들에게 계몽하기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원래는 3,300여매였던 것이 현재는 1,578매가 남아 있는데, 조선말 목판인쇄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내삼문 안의 자양영당
1. 한말의병의 산실 자양영당과 화동강목 :
성재 유중교(1821∼1893년)

2. 자양영당 :
자양영당은 충청북도 기념물 제 37호로 지정되어 있다.

3.  화동강목 :
「화동강목」판목은 1976년 12월2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4. 선비의 큰 도를 따른 의병대장 유인석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이후 전국에서 의병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제천의병이 세가 크고 활발했다. 제천의병을 이끈 사람은 성재 유중교의 제자인 유인석이었다. 유인석은 한말 위정척사파의 거두인 화서 이항로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로 헌종 8년(1842) 1월 27일 춘천에서 출생하여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89년 8월 성재와 함께 제천시 봉양면 공전리 장담으로 이사했다.

학문과 덕행이 깊어 유중교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성재 문하의 많은 동학들이 그를 성재 대신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다. 그는 갑오개혁·명성황후 시해 등 나라가 환란에 빠지자 유생들을 강학처인 제원 장담에 모아놓고, 오늘에 있어서 선비로서의 취할 길은, 첫째로 의병을 일으켜 원수들을 몰아내는 것과, 둘째로는 고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 유학자로서의 대의를 지키는 것, 셋째로는 자결하여 깨끗이 목숨을 보존하는 것 등 세 가지 길이 있을 뿐인데 사람에 따라 사정이 같지 않으니 각기 알아서 갈 길을 가도록 하라고 하였다.

   
▲ 화동
의암(毅菴) 유인석은 1895년(을미년) 5월 15일에 제천 장담에서 향음례를 개최한다는 명목 아래 팔도의 수백 명 젊은 선비들을 모아 국난을 구하기 위해 의기를 높이 들고 외적을 토벌할 것을 결의하고 전국에 격문을 보냈다. 이후 의병대장으로 추대된 유인석은 제자들을 중심으로 인근지역의 포수와 평민들을 규합하여 무려 1만여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제천을 중심으로 한 내륙지역에서 큰 활약을 한다.

유인석의 의병부대는 충주성을 둘러싼 공방에서 결국 일본군과 관군에 패배하고, 유인석은 만주로 건너가 그곳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1915년 중국 봉천성 관전현에서 75세를 일기로 숨졌다. 1962년 정부에서는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복장을 수여했으며 존영은 봉양면 공전리 자양영당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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