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문화재도 시대에 따라 모습을 약간씩 달리 하는 모양이다. 문화재는 늘 거기 있으나 주변 환경이 변하고 또 해체 보수작업으로 인한 변형으로 그때 그 맛이 그대로 살아있지 않다.

요즘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리는 ‘충북 문화재의 옛 모습 전’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일제 강점 초기인 1910년부터 1930년대 사이에 찍은 사진으로 고즈넉한 모습이 일제의 카메라에 담겨 착잡하지만 우리 산하의 문화재에 대한 첫 기록물이어서 보존가치가 높다.

이번에 출품된 사진은 첫 선을 보이는 것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통치하기 위해 문화재, 유적, 풍속, 생활, 종교 등 우리 민족과 관련된 촬영 사진 중 충북의 문화재와 관련된 부분만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의 사진은 유리에 제라틴을 먹인 유리원판이고 사진기 또한 목제 카메라인데 비록 흑백이지만 선명도가 오늘날의 사진과 비교하여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유리원판은 무려 3만8천 매에 이른다.

이 빛 바랜 사진은 마치 문화재 앨범을 보는 듯 하다. 문화재가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으나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색다른 감흥을 준다. 1909년부터 일본인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 貞) 등에 의해 실시된 문화재 조사는 식민통치를 위한 자료조사였으나 오늘날 변형된 문화재의 원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료가 된다.

지금까지 청주의 남석교 사진은 3장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와 앵글이 다른 2장의 사진이 이곳에서 공개되고 있다. 지게를 지고 돌다리를 건너가는 지게꾼과 돌다리에서 무슨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또 다른 사진은 원거리에서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으로 제방의 모습이 선명하다.

용두사지철당간의 모습은 오늘과 다를 바 없으나 철당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일경이 보이고 인근에 우물터인 듯한 임시건물도 앵글에 잡혔다. 1915년에 촬영한 청주~부강간 도로는 삼등 도로로 신작로(新作路)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1921년에 촬영한 중원탑평리칠층석탑(중앙탑) 주변에는 초가가 즐비하다. 이 때 벌써 탑 일대에는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탑도 해체 복원되었다.

충주의 토성벽도 선명하며 탄금대를 감돌아 나가는 남한강의 양반걸음도 운치를 더해준다. 충주시 가금면의 장미산성, 음성 수정산성은 훼손이 덜 된 상태여서 그 원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눈 덮힌 미륵리 사지에 석불이 눈을 이고 있으며 정토사 법경대사자등탑비의 위용과 갓 쓴 촌로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의 홍법국사실상탑은 팔각원당형 부도탑 석조건축미를 대표할 정도인데 지금은 현 위치를 떠나 경복궁 내에 있다.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사자빈신사지석탑은 네 마리의 사자가 간석이 되어 탑신을 머리에 이고 있는데 목책으로 주변을 둘러쌌다. 구담봉 등 단양팔경 사진은 충주호 수몰전의 모습이어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보은 법주사 가람 앞으로는 농부가 황소를 몰며 밭을 간다. 절 집과 민간인의 생활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사천왕 석등 옆으로는 석연지가 배치되어 있는 등 오늘날의 문화재 배치와 좀 다르다. 정이품송의 고고한 자태가 돋보이며 그 옆으로는 폭스 바겐이 지나간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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