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우리민족이 바깥 세상에 내 놓고 자랑할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첫 번째는 부모와 노인을 공대(恭待)하는 경로사상(敬老思想)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선조들이 노인을 공경해 온 미풍은 자그마치 1600년 전 신라 때부터 있어 왔습니다. 비록 산 부모를 늙었다 하여 생매장한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부끄러운 한 때의 역사가 있었긴 해도 삼국시대 이래로 노인에 대한 사회적 공경은 각별했던 것으로 사기(史記)나 실록(實錄)은 전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눌지왕 7년 임금은 온 나라의 노인을 궁중에 모아 양로회(養老會)를 열고 친히 음식을 같이 들면서 비단과 곡식을 하사했다’고 적고 있고 ‘고려사’에도 국로연(國老宴)이라 하여 ‘해마다 노인들을 궁으로 모이게 해 잔치를 베풀었다’고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경로사상이 더욱 숭상되어 ‘해마다 팔도에 사람을 보내 노인들을 모셔다 잔치를 열고 ‘노인직’이라는 벼슬까지 주었다’고 실록에는 적혀 있습니다. 노인에 대한 공경심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 최고의 도덕률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자랑스러운 미풍양속도 근·현대에 들어와 민족의 수난이 거듭되면서 퇴색했고 오늘날에는 경로사상은커녕 노인들이 설자리조차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효사상이 실종 된데 따른 것이겠지만 산업사회로 들어와 대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화한데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노인은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공경의 대상도, 효도의 대상도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딱한 것은 그 존재가 아무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입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몸 바쳤지만 늙은 그들을 기다리는 건 사회적 무관심과 가정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국가가 주는 1만500원의 한달 버스비가 전부입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복지가 잘된 유럽에 가보면 노인들은 늙었다는 것 외에 부족한 것 없이 국가의 보호 속에 노년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만 해도 넉넉지는 못해도 국가가 노후를 보장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일입니다.

늙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오히려 풍상 속에 연륜을 쌓은 늙음은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옛 시인은 노년을 황혼 빛으로, 귤 향기로 묘사했습니다. ‘하루해가 저물매 노을 빛이 아름답고 한해가 저물려 함에 귤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日旣暮而猶烟霞絢爛 歲將晩而更橙橘芳馨)고요.

노인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는 노인의 삶을 자식들에게만 떠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보살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것이 경제규모 세계10위의 나라가 할 일이요, 책임입니다. 그러고 나서 ‘때~한민국!’을 소리쳐야 합니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노인문제를 논하는 것이 겸연쩍은 일이긴 하지만 ‘어버이날’ 늙은이들이 자식 손에 이끌려 밥 한끼 공양 받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운 심정에 몇 마디 푸념을 적어 보았습니다. 망언다사(妄言多謝).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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