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27개 직종 3597명, 정규직보다 많아
청주 2개교 영양사·조리사 해고 취소소동 벌어져

최근 노동계의 최대 관심사는 비정규직 문제와 직결된 근로자파견법 정부안에 대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여부다.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노동계와 대외 경쟁력을 내세워 변형근로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경제계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사기업 영역을 넘어서 공공기관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무대가 바로 우리들의 미래 세대를 키우는 ‘학교’다.

청주 B중학교는 지난 2월 재계약을 중단해 해고시킨 영양사 L씨가 지방노동위 부당해고구제신청에서 승소하자 꼼짝없이(?) 2개월치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고 원직복직 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월에는 청주 D중학교가 계약직 조리종사원 7명을 계약중단했다가 역시 지방노동위의 중재에 따라 재계약을 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초중고에는 급식소에서 일하는 영양사, 조리종사원 이외에 교무보조, 전산보조, 실험보조, 유치원 보조교사, 운동부 코치, 사서, 사서보조 등 무려 27개 직종의 계약직 직원이 일하고 있다. 4월말 현재 총 인원이 3597명에 달해 정규직 일반직원 2971명(교원 제외)보다 오히려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학교-종사자 모두 고육지책
보조업무 종사자가 정식 직원보다 많은 기형적인 구조는 얄팍한 학교 재정의 부담을 덜기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정규직 교원 직원 틈바구니에서 절반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고 위축된 직장생활을 하는 비정규직 종사자들 또한 고육지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교육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일하기 시작한 뒤 내가 한 일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한숨이 나온다. 내가 행정보조로 입사를 한 건지, 아니면 청소부나 학교잡부로 입사를 한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아침 출근을 하면 걸레를 들고 교장실 청소, 행정실 청소를 하고, 지금은 용역을 쓰지만 전에는 화장실 청소도 하였다.
또한 나와 같은 학교 비정규직들에게 차 접대 일은 일상이 되고 있다. 학교 행사가 있거나 손님이 오면 으레 해야 하는 차 접대, 어느 날은 하루에 50잔 이상 차를 타서 나른 적도 있다. 교장실 접대가 아예 업무분장에 있다. 호칭의 경우, 아예 ‘~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뿐만 아니라 행사 때 다과 준비에서부터 정리정돈까지 나는 행정실 직원인가 학교 파출부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대전 모중학교에서 행정보조로 일하고 있는 김경숙씨가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다. 물론 당사자로써 과장된 피해의식의 표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마다 맺는 재계약 과정에서 ‘화장실 청소나 기타 잡무를 하는 것’을 추가조건으로 내걸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면 어떤가. 다른 직원들 다 쉬는 토요휴무일에 유일하게 출근지시를 받았다면 어떤가. 정규직 직원 개인의 모임안내 발송을 맡기거나, 시장보는 일까지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재계약 불안감에 심리적 위축 심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청주 B중학교 영양사의 경우 학교 관리자와 조리종사원간의 갈등이 학부모까지 번지면서 계약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해 7월 학교급식에 이물질이 발견돼 영양사 L씨는 각서를 썼고 조리종사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당시 D중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은 위탁급식업체 대표였고 조리종사원 가운데 그 업체 출신의 여성도 채용됐다는 것.

학교운영위원장은 위탁급식업체 대표였지만 D중학교의 급식방식은 직영급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인터넷을 통해 학교급식 이물질 소동이 벌어졌고 학부모들은 L씨의 해임을 학교측에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측은 L씨가 조리종사원과 갈등이 있었고 이물질 소동이후 학생 학부모로부터 불신임을 받아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학내 구성원과의 갈등 원인에 대해 “개인적 인성과 성격”을 꼽기도 했다. 

이에대해 L씨는 "영양사 경력 18년에 학교급식만 4년동안 맡아왔다. 영양사로써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은 내 과실이고 각서까지 썼다. 그걸 핑계로 학교측에서 재계약을 중단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차피 복직하는 마당에 학교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전지부 안재효지부장은 “조리사들도 계약직이다보니 학교 행정실장 말은 어려워해도 영영사 말은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고 영양사-조리사간에 갈등의 주원인이 된다. 학교는 특히 보수성이 강한 집단문화가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위축이 심한 편이다. 노조가 작년 8월에 설립됐는데도 현재까지 충남북 조합원 수는 35명밖에 안된다. 다들 관심은 갖고 있지만 결국 계약중단 위기에 처하게 되면 노조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봉에 고유업무 이외 잡무는 ‘당연’
도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연봉제에 따라 조리종사원은 월 50~60만원, 교무 전산등 보조업무자는 70~80만원, 자격증을 가진 영양사는 100만원선으로 나타났다. 근무일수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연 최소 245일에서 최대 275일까지 출근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주5일 수업으로 매월 하루씩 쉬는 날은 출근을 요구하거나 방학중에 출근하도록 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년부터 매월 2일씩 쉴 경우에는 연간 16~18일 쉬는 날이 생겨 교육부 지침이 다시 바뀌어야 할 형편이다.

학교비정규직의 가장 큰 불만은 업무영역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과학보조로 채용된 직원이 행정보조가 안 나오면 행정실로, 교무보조가 안 나오면 교무실로, 사서가 안나오면 도서실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지만 전문성을 띤 고유 업무영역이 있음에도 편의에 따라 과업지시를 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 아예 재계약을 앞두고 고유업무에 교장실 담당, 화장실 청소를 추가하는 조건을 제시해 업무를 가중시키기도 한다. 또한 유독약품 등을 취급하는 실험보조나 업무상 컴퓨터 재교육이 필요한 행정교무 보조는 연수교육이 절실하지만 예산에 포함되지 않아 정규직 직원들만 참여하고 있다.

이에대해 도교육청측은 “학교 비정규직 직원은 학교장이 채용권한을 갖고 있다. 과거 일용직으로 분류돼 출근하지 않는 방학에는 임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지금은 연봉제 계약직으로 바꾸고 5개년 계획에 따라 과거 기능직 공무원 수준의 임금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계약중단등 잡음이 있었지만 전체 90%이상이 순조롭게 재계약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충북지부 오황균 지부장은 “학교 비정규직은 열악한 근무여건과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책임감있게 일하기 어렵다. 업무영역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의욕을 살리기 힘들고 그러다보니 학교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또다른 원인이 된다.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학교라는 점을 감안해 우선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차대접이나 청소와 같은 잡무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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