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축구 4강진입이라는 신화를 창조해 낸 광주월드컵경기장은 환희와 감격의 함성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환호 한 켠에서는 온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은 히딩크라는 축구지도자의 모습과 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우리의 최고지도자의 초라한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의 걸출한 지도자로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김대통령이 국민들의 기대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그토록 민주화와 부정비리척결을 외치던 그의 코밑에서 벌어진 자식과 측근들의 비리를 바로보지 못한 과실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지도자 히딩크는 그 자신과 자신이 맡은 한국선수들에 대해 날카로운 독수리 눈매만큼이나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폴란드전 승리 후 우리 국민들이 열광하며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을 때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임을 겸손하게 토로했고 스페인전에서 승리한 광주구장에서는 한국팀이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해 준 관중들을 향해 공손하게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비록 실력은 떨어지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선수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월드컵에서 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가 세계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낫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선수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가짐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는 그런면에서 한국 선수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한국선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순수함에 대한 히딩크의 통찰은 그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고 한국선수들을 사랑하게 함으로써 유능한 지도자와 성실한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팀웍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외압 등에 얽매여 감독의 역할과 선수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이전의 한국 축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이치는 축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국민들의 가슴 속 응어리와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국민들에게 참담한 실망만을 안겨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그 얼마였던가. 시대를 내다보고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험난한 길도 마다하지 않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우리 국민은 대망한다.
며칠 후면 그 뜨거웠던 월드컵의 격정과 열기도 잦아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월드컵의 교훈을 차분하게 이어갈 것인가. 예로부터 지혜로운 우리 선현들은 몸과 마음을 다스려 세상이치를 깨닫는데 차(茶)를 벗삼았다. 오장을 원활하게 하고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정신을 맑게하여 세상을 꿰뚫고 학문과 예술의 참경지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던 선현들의 정신세계 한켠에 깊숙이 자리잡아 온 것이 차였던 것이다.
월드컵으로 격상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이어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월드컵 기간 내내 경기장 안팎에서 세계인의 경탄을 자아내며 성공 월드컵을 이룩한 우리 국민에게 있다. 월드컵 이후 새로운 국운 비상을 꿈꾸는 국민들이 바라는 시대를 이끌어 줄 참 지도자를 대망하면서 그러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그러한 지도자를 세우려는 사람이나 월드컵때 우리가 세계를 향해 보여주었던 그 열정과 성숙함을 잊지 말자.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바로 보고 바로 행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옛 선현들의 지혜였던 차문화를 우리 곁으로 불러들이는 일도 결코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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