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우리 나라는 국토는 매우 좁지만 지역마다 주민들의 성향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주민의 기질에 대한 평도 다양합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조선8도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합니다.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수풀에서 나온 사나운 호랑이), 황해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돌밭에서 갈이 하는 소),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아래 해묵은 부처),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거울 속의 미인),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 밝은 달),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바람 앞의 버드나무),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송죽과 같은 큰 절개)" 이라고 평했습니다.

이와는 다르지만 막된 표현으로 ‘함경도 아바이’, ‘평안도 박치기’, ‘강원도 감자바우’, ‘충청도 멍청이’, ‘전라도 하와이’, ‘경상도 문둥이’, 등의 또 다른 속칭들도 존재해 오고 있습니다.

어떤 논리적 근거로 그렇게 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옳든 그르든 이런 별칭은 각 지역의 상징적 이미지로 국민들 사이에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전국의 행정구역을 함경, 평안, 황해, 강원, 경기, 충청, 전라, 경상 등 8도로 구획을 한 것은 1413년(조선 태종13년)이었습니다. 이런 8도의 행정구역은 480여년 동안 지속돼 오다 고종 때인 1896년에 와서 오늘과 비슷한 13개 도로 재편된 것을 보면 8도 개념은 조선시대의 오랜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경상도다, 전라도다 하는 호칭이 사라질 날도 머지 않은 듯싶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현행정체제의 불합리를 들어 지방행정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두 당 개편안은 현재의 도(道)를 없애고 인구 100만명 정도의 시(市) 60~70개를 새로 만들어 중앙정부가 직접 통할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사실 현재의 행정구역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그 옛날 말(馬)과 봉화가 교통, 통신 수단이던 때 구획된 다층적 행정구조는 비효율의 상징이었습니다.

고속철이 서울~부산을 2시간대에 달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행정파악이 가능한 상황에서 기존의 체계로는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원인이 8도 분할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사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여야의 숨겨진 당리당략, 지자체 공무원들의 반발, 주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이 얽혀 낙관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 행정구역 개편은 행정수도 이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은 만시지탄의 시대적 요구사항입니다. 상전벽해로 국가규모가 바뀐 상황에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낡은 체제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행히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반가운 일이긴합니다.

정치권은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지혜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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