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출신 김병일 서울특별시 대변인

“분명한 정체성, 일관된 소신이 리더의 조건”
지금 이명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결코 크지 않은 체구로 서울이라는 거대한 맘모스를 능수능란하게 조련하는가 하면, 정작 본인은 부인하지만 이미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잠룡(潛龍)이 아니라 승천을 앞두고 전신을 꿈틀거리는 활룡(活龍·?) 쯤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곧바로 탐욕스런 언론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이를 항상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서울특별시 대변인. 자치단체에 대변인이라는 직함이 생긴 것은 이명박체제의 서울시가 처음이다.

   

서울시의 행정은 어차피 강한 정치력을 수반할 수 밖에 없고, 이런 역할의 일부분이 대변인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얼마전 서울시 대변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적이 있다. 이명박시장의 “군대라도 동원해서 행정수도를 막고 싶다”는 발언을 놓고 서울시 대변인이 열린우리당 대변인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인 것이다. 물론 발언의 취지가 왜곡전달됐다고 일부 해명이 뒤따랐지만 사안이 사안인만큼 한참동안 논란이 됐다. 그 서울시 대변인이 다름아닌 충북 청주출신 김병일씨(49)다.

그를 만난 지난 22일, 서울시 청사 앞은 한마디로 어지러웠다. 잘 가꿔진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대책없는 복원사업 박살내자”는 청계천 소상인들의 절규와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는 연등음악회의 리허설이 엇박자의 화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광장 안에선 취타대를 동원한 왕국수문장교대의식이라는 전통 시연회가 열려 외국인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국가 안의 국가라는 표현답게 항상 북적이는 서울시 청사의 1층 전면에 김병일 대변인의 사무실이 있다. 잠깐만 창밖으로 눈을 돌려도 주변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흐름’을 잘 읽어야 하는 대변인에 대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먼저 역할에 대해 물었다. “물론 서울시에도 보도, 공보업무를 총괄하는 홍보기획관이 따로 있다. 전통적 개념의 시정홍보와 기획은 여기서 맡는다. 대변인 역할은 정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중요한 사안에 대한 대외 공표를 책임진다. 일상적인 것보다는 특별히 관심을 끄는 현안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정책보좌 역할을 병행하는데 따른 긴장감도 만만치 않지만 좋은 계기라 생각한다.”

주변에선 지난해 8월 단행된 김병일대변인 인사에 대해 ‘전격적인 발탁’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지만 사실 이명박시장과의 인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99년 정부 산하기관인 지방자치국제화재단 파리사무소장(주재관)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시장 등극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이명박시장에 대해 처음 구체적으로 들었고, 이 때 주변 지인들로부터 “서울시 비서실장 한번 해 보라”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의는 특별한 계기보다는 서로가 잘 통할 것이라는 주변의 막연한 예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김병일씨는 2002년 7월 이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뉴타운사업 본부장을 맡아 핵심 참모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은평, 길음, 왕십리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도시속에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는 이 사업의 성공적 추진은 이시장의 눈에 김병일씨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서울시 대변인에 전격 발탁됨으로써 측근에서 최측근으로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서울시의 교통개혁, 이른바 시내구간의 중앙선 버스전용차로 문제로 언론으로부터 집중 난타를 당한 것도 김대변인의 발탁을 앞당기는 요인이 됐다.

대 언론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한 이시장이 “너 대변인 한번 맡아봐라”며 그에게 큰 신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시장이 자신을 지목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로 배포가 맞고 잘 통한다”며 간단하게 말했다. 실제로 김대변인을 처음 대하는 인상은 이명박시장의 이미지와 많이 유사했다. 역시 결코 크지 않은 체구에 유한 표정이면서도 뭔가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그 스스로도 “남들이 많이 비슷하다고 한다”며 웃어 넘겼다.

”너, 대변인 한번 맡아 봐라” 이명박시장 신임 보여
 국무총리실 청와대 재직할 땐 충북현안 앞장

청주출신인 김대변인은 청주고(47회)를 나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재학중이던 1978년 행정고시(22회)에 합격, 81년 국무총리실에서 처음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의 주요 보직과 청와대, 파리주재 근무를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파리 주재관 당시 소르본대학에서 도시지리 박사과정을 이수해 도시행정 분야에 탄탄한 내공까지 쌓게 됐다. 김대변인은 교육자였던 부친(김문영 전 한벌초등학교장)의 후광(?)에다 청주의 많은 지인들 때문에 여느 출향인사보다 고향과 끈끈한 연을 맺으면서도 오히려 덜 알려진 측면이 있다.

중앙-지방정부간의 인사교류 보증수표인 행정자치부 근무를 안 했기 때문이다. 현재 2급 이사관으로 만약 행자부에 속했다면 도내 공직사회에선 이미 “언제 내려오나”로 주목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이에 대해 그는 “기회가 되면 고향에서 봉직하고 싶지만 그런 행운이 올지 모르겠다. 지방출신 공직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도 계기가 되면 악착같이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는데 청주를 고향으로 갖고 있다는 게 항상 풍족함을 안기는 것같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부처 뿐만 아니라 서울시에도 충북 인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 걱정을 하는 그는 과거 국무총리실 근무시 청주 무심천의 대청댐 물 방류를 노태우대통령 공약으로 집어 넣어 성사시킨 일등 공신이다.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실 부이사관으로 청와대에 재직할 때(1998년)에도 각종 보조금 사업의 충북 낙점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뛴 출향인사로 인정받았다.

얼마전엔 서울시와 청주시문화재단간 자매결연시에도 역할할 정도로 고향에 특히 관심이 많다. 아직 구체적인 안은 없지만 서울시에 직지홍보센터 조성도 한번 생각해볼만하다고 밝힌 그는 이원종지사와 한대수청주시장, 한범덕부지사와도 가깝다. 이지사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당시 국제교류과장, 홍보담당관 등으로 보필했다. 청주엔 동기인 민경헌(중선화물 대표) 김영수(회계사) 민병회씨(치과의사) 등 지인들이 많다.

그의 사무실 TV위에는 인기드라마였던 ‘영웅시대’ 녹화테이프가 여러개 놓여 있다. 이명박에 대한 미화시비 등 각종 논란 끝에 조기방영된 인기 드라마로, 시청할 시간이 없어 녹화해 놓았던 것이다. 이명박의 대권문제와 관련된 질문은 그가 공직신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김대변인은 이런 말로 예봉을 피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렇더라도 공직신분으로 뭐라고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 스스로도 아직 대권문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대권이나 선거문제를 떠나 시대가 요구하는 CEO형 리더임에는 틀림없다. 자치단체장으로서 그 분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면 서울시장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서울시를 제대로 경영하게 되면 좋은 평가를 받지 않겠는가. 이보다 더 확실한 무기는 없다. 과거가 국가 통치시대였다면 지금은 국가경영시대다.” 그러면서 그는 리더의 조건으로 분명한 정체성, 일관된 소신을 특별히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대변인은 역사도 만든다고 한다. 앞으로 김병일은 과연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지,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입과 이명박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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