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동·서로를 온통 흐드러지게 뒤덮었던 벚꽃이 눈보라가 되어 휘날립니다. 어느 시인은 활짝 핀 꽃보다 낙화(落花)가 더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아닌게 아니라 어지러이 춤을 추며 날리는 꽃잎들은 새들의 군무(群舞)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온몸을 불태워 제 할 일을 다했기에 미련 없이 떠나는 꽃들의 헌신 또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형(天刑)의 한센병이 죄가 되어 유랑의 삶을 산 ‘문둥이시인’ 한하운(韓何雲)이 그 사람입니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필~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靑山) / 어린 때 그리워 / 필~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 필~닐리리 /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지나 / 필~닐니리-

어릴 적 고향과 속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그려진 애절한 시 ‘보리피리’입니다.
한하운은 1919년 봄 함경남도 함주의 유복한 선비집안에서 태어납니다. 본명은 태영(泰永). 이리농림학교를 거쳐 중국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그는 고향 등지에서 공무원생활을 하지만 불행히도 나병(癩病)의 재발로 기구한 인생역정의 길을 걷게됩니다.

1948년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 온 한하운은 첫 번째 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문둥이시인’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읍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 ‘보리피리’, ‘한하운시전집’, ‘나의 슬픈 반생기’, 그리고 자작시해설집 ‘황토 길’을 잇달아 출간합니다.

한하운의 시들은 하나 같이 천형(天刑)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고 보통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운 삶과 병마의 고통이 구절구절 서려 있습니다.  그가 나환자 정착촌이 있는 전라남도 고흥의 소록도를 향해 가면서 쓴 ‘전라도 길’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 앞으로도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한하운은 한때 서울 명동에서 거적을 쓰고 걸인처럼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간첩의 누명을 쓰고 국회에서 정치문제화 되는 고통마저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는 병세가 호전돼 소록도를 떠나 서울에서 출판사도 차리고 사회사업도 하지만 오로지 소원은 보통사람들의 ‘보통 삶’이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파랑새) 한하운은 1975년 봄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눈을 감았습니다. 나이 쉰 여섯. 그는 천형을 안고 봄에 왔다 봄에 떠났습니다. 세상에 ‘보리피리 소리’를 아련히 남겨놓고.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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