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고산사를 품고있는 와룡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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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고산사를 품고있는 와룡산성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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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권<2> - 제천시<2>

▲ 고산사 표지석 충주에서 단양 쪽으로 36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월악나루를 지나 덕산에서 내려오는 성천과 월악에서 내려오는 광천이 합류하는 다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왼쪽으로 신현주유소가 나오는데 이 주유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고산사가 나오고 이 절을 둘러싸고 있는 성이 와룡산성이다.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덕산면 신현리(용바위)와 한수면 덕곡리와의 사이에 산(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 신현리 방향의 계곡을 둘러싸고 있다. 길이 가파르기는 하지만 승용차로도 고산사 앞까지 올라갈 수 있다. 와룡산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삭토와 토축으로 된 북벽·서벽·남벽이 있고, 동벽의 경우는 능선의 바깥쪽 비탈을 따라 석축으로 축성되어 있다. ▲ 남아있는 성벽.
성의 형태는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사방이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이고 4∼5개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전형적인 고로봉형식을 따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2,750m이고 북서쪽의 높은 능선에서 낮은 동남쪽 산줄기를 따라 성벽이 만들어져 있다. 주요한 통로는 동쪽과 남쪽이 되며 성내의 물은 동벽의 경사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동쪽 계곡 한곳으로 모여 배수된다. 와룡산성의 수구 부분은 현재 고산사로 들어가는 입구로 새로 축조한 돌담으로 막혀있다.

▲ 왕룡산성 동벽 내외 겹축성벽과 기둥홈 이 산성은 동쪽 계곡으로 나있는 통로 이외에는 모두가 험한 길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북쪽과 남쪽에는 각기 능선의 가장 낮은 부분을 통과히는 문지(門址)가 있어 계곡을 통하여 통행이 가능하지만 성의 외측으로는 가파른 길이 나있다. 능선으로의 길은 봉우리마다 능선을 따라 통행이 가능하며 서남쪽과 서쪽·북쪽·동북쪽으로의 능선이 있다. 하지만 동쪽 성벽의 통과선인 능선은 거듭된 단층성 암반이 비탈을 가로막고 있어 거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다만 동남쪽의 경우 문지와 암문이 있어 양짓말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통로가 있었다고 여겨진다.와룡산성에 올라보면 한가지 의문점이 발견된다. 이제껏 보아왔던 성들의 위치를 보면 육로나 수로를 차단하고 있는 모두가 한결같이 지형적으로 요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와룡산성은 외떨어진 산골에 자리잡고 있다. 인접하여 코앞 송계에는 겹겹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중의 요새 덕주산성이 버티고 있고, 와룡산성은 남한강 수로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이러한 위치는 오늘날에는 궁벽한 산골에 해당되지만 과거에는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한 교통로를 제어하는 위치이다. 즉 남한강의 요충지인 충주에서 동남쪽으로 통하는 가장 주요한 교통로인 죽령대로와 충주에서 죽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문경의 동로면으로 통하는 모녀현로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위치가 바로 와룡산성이기 때문이다. ▲ 와룡사 입구의 석축 벽
모녀현로는 덕산면 도기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벌천리 사이의 고개로서 한강수계와 낙동강수계의 분수령상에 있다. 즉 와룡산성의 남쪽 입구를 흐르는 냇물은 바로 이 모녀현에서 발원한 물이며 이 냇물을 거슬러 올라 모녀현을 넘으면 곧바로 문경의 벌천에 이르게 된다. 죽령을 넘지 않고 예천·문경 방면에서 북으로 벌렁재를 넘어 단양천 상류로 해서 다시 서쪽으로 모녀치를 넘어 성천을 따라 충주로 오는 직로가 된다. 이런 점에서 와룡산성은 남한강 남쪽 언덕에 있는 요충지로서 죽령대로 뿐 아니라 덕산면 지역을 지나는 또 하나의 옛길인 모녀현로와 꼬부랑재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덕산에서 만난 60∼70대 노인들을 통해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경상도 소장수들이 소짚신을 신켜 벌렁재를 넘어와 덕산장을 보곤 했다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백두대간을 넘는 죽령·새재·추풍령 외에도 많은 고개를 통해 왕래를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와룡산성이 사용되었던 시기는 성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성벽의 축조방식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기와류나 토기 파편들이 신라말에서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것들이고, 축조방법에 있어서도 고려시대 내륙지역에서 유행하던 석축 방식이 사용된 점을 미루어 이 산성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는 이미 잊혀진 산성으로 존재하였다고 여겨진다.

   
▲ 고산사 삼성각과 응진각.
룡산성 안에는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산사가 있는데, 현재의 불사는 1956년 병신년에 월하스님이 중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산사의 대웅전에는 다른 불사에서는 볼 수 없는 탱화가 있는데 관세음보살을 주존으로 좌우 3구의 나한(부처의 제자)탱화(벽에 거는 그림)가 바로 그것이다.

탱화는 글을 알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알려주기 위한 배려에서 그려진 불교에 관한 그림이다. 한창 단청을 그리며 고산사 응진각에서 일하던 서울 인부들 중 한사람이 응진각 뒤 바위에 쓰여진 한자를 알려주었으나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잘 정돈된 산성을 답사하는 것도 좋지만 허물어진 산성의 자취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옛사람들의 체취를 느껴보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다.

와룡산성을 내려오는 길에 전국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약초장이 열리는 덕산장을 들렀다. 덕산면은 예로부터 약초로 이름난 곳이며 지금도 월악산에서 나는 약효 뛰어난 약초를 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약초상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모처럼만에 보는 시골의 오일장에서 예전의 왁자지껄했던 장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옛 정취여서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이전 대면 아무 것두 아니지.”예전의 영화가 못내 아쉬운 탓인지 장터의 목로에서 만난 촌로가 막걸리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 촌로의 말에 의하면 하설산 정상부에도 허물어진 돌무더기가 있단다. 하설산은 월악산과 문수봉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길목에 있는 산으로 그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나무를 하러 여러 번 올랐었는데 무너진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있단다. 분명히 산성이 있을 법한 곳이기는 했지만 직접 올라 확인할 길은 없었다.


1. 관세음보살 :
보살의 하나. 아미타불을 왼쪽에서 모시고 있는 보살로 대자대비를 그 근본 서원으로 하며 중생이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화신하여 구제한다고 한다.

2. 청풍문화재단지 :
제천군 청풍면 물태리에 있으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지역에 산재한 각종 문화재를 한자리에 모아 조성한 곳으로 단지의 구성은 관아·민갇향교·석물군으로 나누어 배치하여 옛 고을의 모습을 축소, 재현시키고 있다. 특히 고가내에는 1,600여 점에 달하는 우리 전통의 생활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역사문화의 산교육장으로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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