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폭염에 비틀거리던 땅으로 하늘은 급기야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형체도 없고 강하지도 크지도 않은 작은 물방울들이 마른땅을 적셔가며 제 가야할 길을 굽이굽이 찾아 흘러간다.

오늘도 쉽지 않았던 하루. 고단한 몸을 시원한 빗소리에 뉘이며 나는 안식의 커튼을 쳤다. 그러나 창문너머 들려오는 빗소리는 배추 팔던 아주머니의 넋두리가 되어 온 밤을 뒤척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앞엔 작고 앙증맞은 시장이 날마다 형성된다. 좌판엔 시골 아주머니들이 들고 나온 갖가지의 채소며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들로 늘 분주하다. 누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보기에도 영 맛이 없어 보이는 배추를 가지고와 좌판에 내려놓으며 앓던 가슴의 소리들을 소나기처럼 퍼부어대는 여인이 있었다.

먼저 강낭콩을 심었었는데 냉해를 입어 밭을 갈아엎고 대신 배추를 심었더니 날씨가 더워 병도 심하고 배추속이 다 썩어 버렸단다. 병든 배추가 밭에 널브러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돌 것 같다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몹시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닮았다. 배추에 뿌려 댄 물 값은 두고도 씨앗 값조차 건질 수 없다며 천원에 세 포기씩 줄 테니 가져가란다.

죄 없는 어린자식들 때문에 억지 춘향 살아간다는 여인. 나는 동병상린의 연정을 느끼면서도 배추를 싸게 준다는 말에 그 여인이야 속이 터지던 말든 누가 더 좋은 것으로 가져갈세라 부랴부랴 배추를 골라 담았다. 너무 좋은 것만 골라 담으면 안 된다는 아주머니와 실랑이까지 벌이는 나! 그녀에게 나는 이방인이었다.

나는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창을 열었다. 캄캄한 공간 저쪽에서 배추를 사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의 모습인 듯 검푸른 물빛이 비에 젖는 가로등 불빛에 출렁였다.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빠져 발버둥치는 이카루스를 보았다. 그 여인이나, 나, 아니 세상사람 모두가 광활한 삶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또 하나의 이카루스였다.

이카루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에 가까이 가는 바람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신화의 주인공이다. 어둠 저편으로 화가 브뢰겔이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푸른 바다엔 배도 떠있고 섬도 있었다. 언덕에선 목동이 양을 치고, 비탈 밭에선 농부와 소가 밭을 갈고, 또 한사람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전경은 너무나 평화스럽다. 화폭 사분의 일이 하늘이고 나머지가 바다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한 생명이 광활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갈색의 막대기처럼 보이는 두 다리만 보일 뿐이다. 한 인간의 예기치 못했던 재난 앞에서 세상은 꿈쩍도 않는다.

그림에는 어부, 농부, 목동 세 사람이 등장한다. 물에 빠져 살려 달라는 이카루스의 절규를! 그도 아니면 물에 ‘풍덩’ 하고 빠지는 소리를 그들 중 하나는 분명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들 자기들 일에만 몰두 하고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를 통해 삶의 바다에 빠져 몸부림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았다.

태양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 이카루스의 도전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칠년 전, 우리 농장엔 태어 난 지, 채 사흘이 되기도 전에 갓 난 돼지들이 죽어갔다. 인체로 말한다면 괴사 병! 주로 신생아에게 나타나는데 수술을 해도 대부분 생명을 잃는다고 한다.

어린새끼 돼지의 창자가 썩어 들어가는 병! 원인도 해결책도 없이 수많은 날들 속으로 내 온 몸의 모든 것들이 소리 없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두 남김없이 내 곁을 떠났다.허접한 내 삶의 옷자락 하나 여미지 못하고 역류하는 심장으로 술잔만 기울이며 휘청거리는 도시 한 귀퉁이에서 이방인이 되어가는 나! 내겐 그렇게도 거친 소용돌이 속인데 세상은 평온하기만 했다.

긴 여정에 발목이 바스라져 울부짖고 있는데 그 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세상은 마냥 태평했다. 거리엔 사람들로 출렁이고, 상점의 진열장엔 화려한 상품들이 넘쳐나고, 도시는 밤마다 흥청거렸다. 이렇게 세상은 개인의 운명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배추를 팔아 순수한 생을 이어가려던 아주머니의 절망 앞에 내가 이방인이었듯, 한 인간의 절대 절명의 순간이 타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세상은 개인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세상 속에 나라는 진실한 의미는 가느다란 갈색의 막대기로 존재하는 이카루스의 두 다리뿐이다. 검푸른 바다에 빠져 발버둥치는 이카루스의 두 다리가 있어 아직 세상에서 존재의 조건이 됨을.

추락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또 한번 내게 부여 하는 것이다. 끝모를 추락! 그것은 내게있어 또 다른 비상을 향한 아름다운 날개짓이 되리니.

칠월의 하늘은 독하게도 파랬다. 그 파란 하늘로 태양을 향해 날아 오르는 이 세상 많은 이카루스들의 날개는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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