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라사 박동식·GQ양복 윤봉구 사장이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새 우리들 삶 속에서 자취를 감춰 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겨우 찾아서 한벌을 맞춰 입을 수 있었던 맞춤 양복집 '라사'였다.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에서 GQ양복점을 30년 넘게 운영 해 오고 있는 윤봉구씨, 그는 70∼80년대 지금 성안길의 전신인 본전통 골목에 8개소를 비롯해 웬만한 동네에 한개씩은 자리잡고 있던 '라사'에 대해 말했다.
"70년대 초반 청주지역 일원만 해도 40개소는 족히 됐다. 그러다가 80년대 초반 기성복이 들어오고 전두환 대통령이 교복자율화를 시키면서 벌이가 시원치 않아졌다. 맞춤양복점은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 지금은 충북권 내에 정통 '라사'는 3개소 뿐이다"

윤씨가 말한 3개소는 벌써 36년째 서문동을 지키며 박동식씨가 운영하고 있는 '형제라사'와 강충열 사장이 경영하는 '대림라사'를 일컫는 말이다.

▲ GQ양복점 윤봉구 사장 형제라사는 다른 사람들이 '세탁소'나 '양복점'이란 상호로 바꾼 것과 달리 아직도 '라사'란 상호를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 라사는 포르투칼어로 '옷을 깁는다'라는 개념이다. 김사장의 말에 따르면 36년 전 형제가 운영하던 맞춤양복집을 인수하면서 그대로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와 달리 어렵게 배운 봉재기술을 벌이가 되지 않자 세탁업으로 바꾼이도 있다. 내덕동 신미라사에서 신미세탁소로 업종을 변경, 운영하고 있는 김영준(59)·곽병애(56)씨 부부다. ▲ 신미세탁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준(59)·곽병애(56)씨 부부다
김씨는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렵게 공부하다가 중학교 졸업이후 '동광라사'에서 봉재기술을 배웠다.

그뒤 30여년을 이어오던 '신미라사'를 신미세탁으로 바꾸고 전업을 했다. 그래도 김씨는 한 때 3명 이상의 종업원을 두고 번 돈으로 남매 대학공부까지 시켰다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윤 씨도 "사양길에 접어든 이후 어렵게 배운 재봉기술을 썩히며 막노동을 해서 생업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능경기대회입상자들의 모임인 (사)한국기능선수회 충북지회장으로 매년 한 차례씩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GQ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윤씨는 "복고풍처럼 맞춤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이미 보험과 병원도 맞춤의 시대다"라고 희망섞이 말을 전했다.

또 "70년대 당시도 양복 한벌에 쌀 3가마 값(5만원 정도)은 될 정도로 비쌌지만 장사는 됐다"며 "지금은 한 벌에 50만원에서 180만원까지 있지만 700명 정도의 단골이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이지 오더 시스템(easy order system)는 맞춤과 동시에 가봉하여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컴퓨터에 입력된 치수를 수정 재단하여 재작 10일 후면 납품이 가능한 방식으로 단가를 대폭 낮춘 30만원대 맞춤양복 시대가 앞으로 열린다"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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