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실습용 사체난 편승, 충북에도 관광상품 등장

최근 청주시내 R여행사의 중국 관광상품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 K대 의대 학생 60여명을 상대로 오는 6월 20일부터 세차례에 걸쳐 약 일주일씩 중국에서 인체 해부실습을 갖기로 하고 세부 일정까지 조율을 끝낸 것이다. 의대생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사체해부실습을 할 대학은 연변대학이다.

R여행사 대표는 이번 일정에 대해 “특수 사업”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기대감(?)을 표했다. 국내 의과대학들이 실습용 시신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때문에 지난 2000년쯤을 기점으로 일부 대학들이 이처럼 실습을 위해 중국의 대학과 자매결연하거나 상호교류 협정 등을 맺고 시신난을 해소해 왔다.

이의 틈새를 뚫고 일부 관광여행사가 중국에서의 사체해부실습을 아예 관광상품으로 내 놓았고, 결국 충북에까지 상륙한 것이다. 문제의 관광상품은 당초 계획대로 알차게 이뤄져 국내 의대생들의 현장 의학지식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일부 대학과 여행사들의 경우 염불보다는 잿밥만 밝히는 바람에 빈축을 샀다.

걱정되는 어깨너머 해부학
한국의 의대생들이 시신을 만나러 외국에까지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국내에 실습용 시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행려병자나 무연고자의 사망시 그 시신이 손쉽게 대학 실습용으로 인계됐지만 인권의식이 높아지기 시작한 80년대부터 관련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시신확보가 어려워지게 됐다.

현재는 대부분 본인 혹은 유족들의 기증에 의해 시신을 확보하게 되는데 일정 수준의 개체수 유지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충북대 의대 해부학 기사 송진호씨(62)는 “매년 확보되는 시신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신경쓰인다. 의료기술을 높이려면 학생들이 맘껏 시신을 놓고 해부학 실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기증되는 시신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와 스케줄에 의해 꼭 필요한 실습용으로만 제공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신기증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의 의대생들은 통상 본과 1학년 1학기에 해부학 실습을 본격적으로 이수한다. 시신 한구에 5~6명 정도가 실습하는게 정상인데 시신확보가 어렵다보니 때에 따라선 수십명이 달라 붙어 소위 어깨너머 해부학으로 과정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생명을 다루는 기초 의술에 있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됐고, 대학들이 이의 타개를 위해 갖가지 묘책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충북의 대학들도 한 때 심각한 시신난을 겪어 사회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3년 4월 21일에 있은 장기 및 시신기증 서약식이다.

지역 인사, 단체 시신기증에 찬사
당시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 충북본부(본부장 주서택 청주 CCC 아카데미 목사)가 주도해 지역인사 30여명이 장기 및 시신기증 서약식을 가졌는데, 이날 17명이 도내 최초로 의대가 개설된 충북대에 시신기증을 서면으로 약속했다.

이상훈씨(68·충북지역개발회장)를 비롯해 노영민(48·열린우리당 의원) 김윤모씨(46·청주 베다니학교장) 등 지역 인사가 이 서약에 동참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운동에 힘입에 현재 충북대에는 340명이 향후 시신기증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매년 확보되는 시신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2003년 13구, 2004년 9구가 추가로 들어 와 현재 20구의 시신을 확보하고 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의대생들의 실습에 큰 지장은 없어도 충분한 숫자는 아니다.

한 관계자는 “기증을 약속한 사람들중엔 가족들에 의해 의사가 번복되거나 거주가 불명확해지는 경우도 있다. 고령자의 기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실습용 시신확보를 어렵게 한다. 이웃 일본만 해도 대학별로 시신기증운동 단체가 활동해 사체확보가 쉽지만 아직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시신에 손대는 것을 금기시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사후에도 모든 걸 주고 가는 참 스승
우리나라에서 시신기증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80년대 후반 쯤이다. 해부학 교수로 서울대 의대학장을 역임한 고 이광호교수가 죽기전 시신을 기증하면서부터다. 충북에서도 세인들을 숙연하게 하는 기증사례가 있었다. 역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선각(先覺)이 두드러져 충북대 의대에 재직중인 정구보교수(해부학)는 본인은 물론 모친의 시신까지 대학측에 기증, 교육자의 참 모습을 보였다. 이 대학 초대 약대 학장을 지낸 박정섭교수와 이형래교수 역시 생전에 본인들의 시신을 기증, 현재 학생들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충북대 해부학 기사 송진호씨 “시신을 보면 볼수록 경건해 집니다”
충북대 의대 해부학 기사 송진호씨(62)는 사람들의 사체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곳 의대생들의 인체 해부학실습이 모두 자신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

84년 충북대와 인연을 맺은 뒤 87년 충북대 의대가 설립되면서 지금까지 줄곧 해부학 기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2년전 정년 퇴직했지만 학교측에서 이 분야 필수요원으로 인정하는 바람에 다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우리한테 인계되는 시신이 많았다. 정신병원이나 위탁시설, 부랑아시설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인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로 지금은 거의 100% 가깝게 기증에 의해 시신을 확보한다.”

그에 따르면 전체 기증자중 약 65%가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머지 35%가 일반 시민들로, 점차 시신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 “전통적 고정관념 때문에 아직 시신기증이 보편화되지 못했지만 이젠 인식들을 바꿔야 한다. 학생들이 기증된 시신으로 실험이나 실습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경건하게 느껴진다. 조건없는 베품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비하면 그래도 시신기증이 많이 활성화됐다.”

충북대에 기증된 시신은 활용이 끝나면 화장돼 유족에 인계되거나 자체 납골당에 안치된다. 충북대는 2002년 의과대 4층에 ‘생명사랑 한누리’라는 납골당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추모제를 지내는 등 기증된 시신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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