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정조 15년(1791)에 현감 정해래가 현재의 위치로 옮긴 이래 여러 차례 낡은 부분을 고치며 손질을 가했다. 순조와 고종때에도 중수하였는데 풍화루는 1915년에 무너져 없어졌다. 현존하는 영춘향교의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동제·제기고·외삼문·고직사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완만한 지형을 남남서향으로 정지하고 있는데 그 배치는 외삼문 내삼문 그리고 대성전이 중심축을 이루고 그 우측에는 명륜당이 좌측에는 동재와 제기고가 배치되어 있다. 제향공간인 대성전은 단층 목조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폐쇄형으로 내부는 통칸으로 긴마루가 깔려 있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정면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은 통칸 대청으로 앞쪽으로 쪽마루를 달아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의루(四宜樓)는 숙종때 건립한 것으로 전해오는데, 사의는 예로부터 길지(吉地)로 인식되어 온 이곳 영춘땅의 산·수·인·심(山水人心)을 뜻한다. 영춘앞을 흐르는 격강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광나루의 소금배와 오대산과 소백산에서 흘러 온 뗏목이 만나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남한강 뱃길문화의 중심지였다. 여름 홍수와 겨울 빙하로 인해 내륙의 섬이었던 영춘땅 격강위에 90년대초 영춘대교가 건설됨으로써 비로소 사계절 육지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