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의토요산책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을 꽃 피게 하고 / 추억과 욕망을 뒤섞어 /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어나게 한다.

영국시인 T·S엘리엇의 ‘황무지’가운데 ‘죽은 자의 매장’서두입니다. 1922년에 발표된 이 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황폐해진 당시의 시대 상황이 잘 그려져 있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4월의 역사가 기구하였기 때문인지 ‘잔인한 4월’은 우리 나라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1960년 ‘4월혁명’뒤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던 터라 대학생들의 애송시가 되었고 4월의 신문 타이틀로 애용되곤 했습니다.

또 4월은 이 땅의 조상들이 ‘보리고개’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비극의 계절이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져 햇보리를 기다려야 하는 굶주림의 나날이 바로 이 4월이었던 것입니다.

쑥버무리로, 아카시아꽃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기아와 싸우던 때가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것은 먼 옛날에도 있었던 일 이었고 50년 전에도 있었던 이 땅의 슬픈 역사입니다.

지난날의 4월이 어떠했건 그 4월이 다시 우리 곁에 왔습니다. 비온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태양 빛은 빛나고 싱그러운 봄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어 살갗을 간지럽힙니다.

산수유 목련 개나리 등 성급한 나무들과 꽃다지 제비꽃 노루귀 할미꽃 등 야생초는 이미 꽃을 피우고 있고 벚꽃 매화나무도 한창 개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시절은 중춘지절(仲春之節)입니다.

5일은 한식(寒食)이자 청명(淸明), 20일이 곡우(穀雨)이니 봄은 이제 제철에 들어서고 농촌의 일손도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19일은 45년 전인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학생들이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린 이 나라 역사의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옛 사람들은 봄을 구십춘광(九十春光)이라 하였습니다. 봄 석 달의 맑은 햇볕을 이르는 말이겠으나 이 땅의 봄은 폭설에, 황사바람에, 산불에 허둥대며 왔다가 이내 가버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이 있어 좋다 하나 우리 국민의 조급병이 계절 탓이라는 분석도 있고 보면 봄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올해도 예외 없이 산불이 강원도를 휩쓸었습니다. 강풍에 때를 만난 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소실되고 산림과 민가가 재가 되는 천재지변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요,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다’라는 시구(詩句)는 바로 이런 것을 이름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전 세계 11억 카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선종은 온 세계에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 않고 인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였던 그 분이셨기에 우리의 슬픔은 더욱 큽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이들의 벗이 되어주시기를 빕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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