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8강 진출의 흥분과 열광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월드컵이 온 국민을 하나되게 한 공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월드컵 집단최면에 홀려 이외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판단불능 또는 거부상태에 빠진 것이 아닌지 못내 안타깝다.

월드컵에 파묻힌 지역이슈로 진천군 ‘기자실 습격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기자실 집기등을 들어내고, 출입문을 잠가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진천군 공무원직장협의회 집행부인 이들 공무원들의 움직임을 감지한 출입기자들이 미리 사무실을 비우는 바람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의 결심에 따라 기존 기자실 운영체제를 폐지하고 브리핑룸으로 바꾼 곳이 있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에서는 절차를 무시한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직장협 공무원들을 격하게 만든 원인과 배경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기존 기자실 운영방식에 대한 누적된 반감이 표출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작성한 유인물 내용을 간추려보면 ‘단체장의 하루아침 기분은 신문이 좌우한다. 혹여 1면에 나쁜기사가 날라치면 관련 부서는 호출되고 쫄다구들은 해명자료 준비에 바쁘다’ ‘그들은 관청을 출입하면서 기사를 스스로 구하지 않는다. 해당 관청에서는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항상 기사를 제공할 채비가 되어있다. 때에 따라서 전해주기만 하면, 오타도 여과도 없이 액면 그대로 게재하여 준다’ ‘때에 따라선 정기적으로 약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쥐약을 준다. 극히 이례적이지만 홍보기사를 내주는 조건으로 쥐약을 치는 경우도 있다’는 등의 적나나한 표현을 서슴지않았다.
기자단에 대한 불신과 함께 기자실 폐쇄에 대한 기관장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브리핑룸제로 바꾼 남해군과 장성군의 예를 들기도 했다. 진천군 공직협의 이같은 논리적 주장 이면에는 감정적 반감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관내 구제역 발생으로 전 직원이 장기간 야근·특근등 전례없는 강행군을 하고 있는데 느닺없이 M신문에서 구제역 야간 근무자의 음주사실에 대해 대문짝만하게(?) 보도하고 나선 것. 해당 직원들은 “M신문 기자가 구제역 방역현장을 취재하다가 근무직원과 언쟁이 되자 감정적으로 기사를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재선에 성공한 진천군 김경회군수는 뒷수습에 골몰하며 지금까지 기자실 문을 다시 열지 않고 있다. 또한 감사부서에서는 강제폐쇄를 주도한 직원을 상대로 출장등 개인업무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한다. 전국공무원노조 충북본부는 기자실 운영개선을 올해 주요 사업과제로 정해놓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과도한 언론사 협찬에 대해서도 제동걸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마침내 진천군 직장협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에 나섰지만 민선단체장의 의지여하에 따라 언론사의 역공에 막혀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관언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일선 공무원들의 결연한 의지가 월드컵 광풍에 묻혀 ‘찻잔속 태풍’으로 스러지지 않을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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