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청원지역 후원금 및 기부자 정밀 분석
얼굴없는 고액기부, 직무 연관 가능성 곳곳 드러나

도내 국회의원들이 받은 2004년 정치후원금 모금 내역을 추적한 결과 ‘얼굴 없는 고액기부’와 ‘직무 연관 가능성’ 등이 곳곳에서 드러나 ‘정치자금을 투명화한다’는 관계법의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오제세의원(청주 흥덕갑)의 경우에는 명단 공개가 허용된 120만원 이상 고액기부자 23명 가운데 60.8%인 14명의 직업을 공란으로 제출해, 공개의 의미를 반감시켰다. 또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내고 국회 과기정통위 소속인 변재일의원(청원)은 고액기부자 42명 가운데 10여명이 정보통신 관련 업체 관계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홍재형의원(청주 상당)의 고액기부자 가운데에는 각종 협회의 전·현직 관계자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후원금 모금방식이 철저히 계좌입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를 무조건 대가성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후원금제도를 음성화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충청리뷰는 충청북도선거관리위원회가 3월22일 공개한 ‘2004년 정당후원회 수입·지출 내역’ 가운데 청주, 청원이 지역구인 홍재형, 오제세, 노영민, 변재일의원의 고액기부자 명단을 중심으로 그 실체를 추적해 봤다.

   
감투 크기와 후원금은 비례
먼저 후원금 총액에 대한 비교에서는 국회의원 당선 이전의 감투 크기와 후원금 규모가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는 전관예우(?)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뒷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홍재형의원의 모금액은 4억4천984만5000원으로, 도내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많았고(전체 국회의원 중에서도 3위),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변재일의원이 2억7천608만9000원으로 2위, 인천광역시 부시장을 지낸 오제세의원이 1억8천433만원으로 3위, 민선 충주시장 당선 이전에 내무부 지방기획국장을 지낸 이시종의원이 1억7천505만4000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이에 반해 관료출신이 아닌 노영민(9천809만원), 이용희(9천285만원), 김종률(4천640만원), 강혜숙의원(2천302만원) 등은 모금액이 상대적으로 크게 적었다. 한편 경찰 관료 출신인 서재관의원은 6천674만원을 모금해 비례대표를 포함한 9명 가운데 7위에 머물렀다.

홍재형의원-협회 관계자 후원금 많아 홍재형의원(청주 상당)은 후원금 총액에서 도내 최고를 기록했지만 고액기부자 수는 1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내 인사로는 신라개발 이준용회장등 건설업체 임원들이 눈에 띈다.

중앙 인사들의 경우에는 각종 협회의 전·현직 임원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해 여당의 정책위원장을 지낸 파워를 실감케 하고 있다.
한국LP가스공업협회 상근 부회장을 지낸 박정철(64)씨를 비롯해 생명보험협회 고문을 지낸 뒤 현재 고려신용정보 고문으로 있는 조태무(66)씨, 유진종합개발 대표이사로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 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유재필(74)씨, 로만손시계 대표이사로 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인 김기문(51)씨 등이 이같은 경우다.

로만손 김기문대표이사는 개성공업지구 기업책임자회의 회장을 맡아 우리 기업의 북한진출을 위한 제반 조건 마련에 힘을 쏟고 있으며, 올해 안에 ‘통일시계’ 30만개를 북한에서 만들 계획이다.
홍재형의원 후원회 회계책임자 A씨는 “친소 관계에 따른 후원금도 있지만 정치활동에 대한 개인적 지지의사에 따라 계좌 입금된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억지로 대가성과 연결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제세의원-대기업 간부들 직업 공란
오제세의원(청주 흥덕갑)에 대한 고액기부자는 모두 23명에 이르지만 60.8%인 14명은 직업을 밝히지 않은 이른바 ‘얼굴없는 기부자’들이다.

그러나 직업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 가운데에는 이순종(63) 한화 부회장을 비롯해, 이평호(55) 한화건설 상무, 청주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골프장 사업을 하고 있는 정홍희(51) 덕일, 로드랜드 회장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제세의원의 고액 기부자들은 또 20명이 서울이나 인천·경기지역에 주소를 둔 것으로 나타나 경기고, 서울대 인맥과 인천 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형성한 인맥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맥에 의한 대표적인 후원자는 경기고 동창인 LG화재 구자준(56) 대표이사로, 지난해 총선 전후 2차례에 걸쳐 기부한도인 5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에 주소를 둔 후원자는 최초 도내 건설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나선 원건설 대표이사 김민호씨 부부와 이상열 대한전문건설협회 충청북도회장 등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제세의원 후원회 회계책임자 B씨는 “서울, 경기지역에 주소를 둔 후원자는 대부분 동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통장으로 입금돼 직업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얼굴없는 기부가 많은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노영민의원-대부분 당선 뒤 입금
관료 출신 의원들에 비해 모금 총액이 크게 적은 노영민의원(청주 흥덕을)은 고액기부자도 9명으로 다른 의원들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인사 가운데에는 JH개발 공동 대표인 안창국(67) 전 청주 부시장과 이상열 전문건설협 충북도회장, 학교 동창인 구본열 (주)에버코스 대표이사, 현재는 서울로 사업처를 옮긴 정홍희(51) 로드랜드 회장 등이 후원금을 냈다. 중앙 인사로는 대한항공 서상묵(58) 전무가 3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안창국 전 부시장과 친구로 알려진 윤승섭, 구본열씨 등 3명만이 총선 전에 후원금을 냈을 뿐 나머지 6명은 모두 당선 뒤에 후원금을 줬다는 것이다.
특히 오제세의원에게도 후원금을 준 정홍희씨는 오의원에게는 총선 직전인 3월31일에 후원금을 전달한 반면, 노영민의원에게는 11월8일에 후원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노영민의원실 관계자 C씨는 “어차피 정치인이 돈을 받는 것이 마냥 떳떳할 수는 없겠지만 후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자금법을 개정한 만큼 정상적인 후원금까지 백안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변재일의원-벤처 관계자 후원 몰려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내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인 변재일의원(청원)의 고액기부자는 모두 42명인데, 4명 중에 1명은 벤처기업 관계자들인 것으로 분석됐다.

상당수가 사업, 경영인 등으로 업체명을 적지 않았지만 확인 결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벤처기업인들도 상당수에 이르러 눈길을 끈다.
한글과 컴퓨터 백종진(46) 대표이사를 비롯해 소넷의 지영천(46)대표이사, 노아테크놀로지의 장재석(52) 대표이사, 디지토닷컴의 김근태(44) 대표이사, 에스넷시스템의 박효대(52) 대표이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을 시작으로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 정통부 차관 등을 지낸 관록을 읽을 수 있지만, 자칫 직무상 연관성에 대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밖에도 정·재계의 명사로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윤진식(60) 서울산업대 총장, 이경재(59) 한화이글스 대표 등이 후원금을 냈다. 지역에서는 하나로저축은행의 송영휘(48)대표, 광도건설의 한충환(49)이사, 자화전자의 김상면(60)대표 등이 변의원의 고액 후원자다.

여기에다 변장섭(50) 청원군의회 의장과 부인 김애영(49)씨가 각각 50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밝혀져, 상황에 따라서는 논란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의원 당선 당시 한나라당 당적을 지녔던 변장섭의장은 지난 총선에서 변재일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으며, 지난 3월3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변재일의원실 관계자인 D씨는 “변재일의원은 관료시절부터 정보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개인적 관계에서 도움을 주는 기업인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정치자금법이 투명하게 개선된만큼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정치자금을 바라보는 의식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왜? 얼굴 숨기나, 일부는 부인 이름으로
어찌 됐든 고액기부자 명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노골적인 얼굴 숨기기다. 아예 직업란을 공란으로 비워두거나 대부분 자영업, 사업, 회사원 등으로 적어 구체적인 법인명이나 근무처를 알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단을 입수한 4명 의원의 고액기부자 88명 가운데 법인명이나 근무처를 구체적으로 밝힌 사람은 구자준 LG화재 대표 등 단 4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특히 일부 기업인 등은 부인 명의로 후원을 하기도 했는데, 본인 명의로 변재일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자화전자 대표 김상면씨는 부인 최 모씨 명의로 홍재형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원건설 대표 김민호씨와 변장섭 청원군의회 의장도 각각 자신과 부인 명의로 후원금을 낸 경우다. 그러나 직업을 ‘無’로 표시하거나 주부로 표시한 또 다른 3명은 후원자의 구체적인 신분이나 차명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처럼 고액기부자들이 얼굴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마디로 말해 ‘괜한 의심을 사기 싫어서가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더구나 고액기부자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는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업란을 비운 채 후원금을 낸 E씨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한다는 정치자금법의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아직까지 정치인을 드러내놓고 후원하는 것은 쓸데없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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