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향토학자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즐기기엔 충북이 최적지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유적이 줄잡아 30여 군데 있는데 이중 3분의1에 해당하는 10여 곳의 유적이 충북에 소재한다. 한반도 선사문화의 시원(始原)격인 ‘단양 금굴’을 비롯하여 후기구석기(2만년전)를 대표하는 ‘단양 수양개 유적’과 ‘단양 구낭굴’ ‘단양 상시바위그늘’ ‘제천 창내’ ‘점말 용굴’ ‘청원 두루봉’ ‘샘골’ 유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처럼 충북에는 선사유적이 많은 것일까. 첫 번째로는 소백산하를 굽이치는 남한강, 금강가가 삶의 터전으로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물은 우선 용수를 공급하고, 내륙 깊숙이 뻗힌 물길은 자연이 선사한 고속도로다.

두 번째로는 제천, 단양, 청원의 석회암 지대가 뼈 화석을 잘 보존케 했다. 청원 두루봉에서 출토된 쌍코뿔이, 동굴곰, 사슴 뼈로 만든 치레걸이(목걸이) 등 숱한 동물 뼈는 원래의 형태로 복원되어 충북대 박물관에서 50만년의 세월을 포효하고 있다. 단양 수양개 유적이 석기의 보고(寶庫)라면 그 옆에 위치한 구낭굴은 뼈 화석의 보고다. 비록 작은 굴이긴 하나 이곳에서는 사람의 손 마디 뼈와 호랑이 송곳니, 하이에나, 설치류 등의 짐승 뼈 화석이 쏟아져 내릴 정도였다.

현지에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햇님 달님’ 설화가 내려오는데 발굴조사 결과 사람 뼈와 호랑이 이빨이 함께 출토되었으니 그 설화가 사실인지도 모른다. 선사인들은 비록 글자로 기록하지는 못하였으나 산맥을 넘어오는 꽃바람이 좋고 호수에 뜨는 달이 밝은 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충청도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는 고사성어는 조선시대 정조임금과 규장각 학사 윤행임(尹行任)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 정서의 출발점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진다. 산에서 피는 꽃은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먼저 꽃망울을 터트렸다. 뒤늦게 꽃바람을 받아온 인류는 진달래꽃으로 집안을 꾸밀 줄도 알았다. 청원 두루봉 동굴 제2굴 7문화층에서는 진달래 꽃가루가 집단으로 검출되었다.

굴 입구 모서리에서는 1백57개의 진달래 꽃가루가 나온바 있는데 산성토양에서 잘 자라는 진달래가 왜 알카리성 토양에서 집단으로 검출된 것일까. 이는 선사인의 미(美)의식으로 해석된다. 두루봉 동굴을 발굴한 이융조 충북대 교수는 이를 두고 ‘첫 번째 꽃을 사랑한 사람들’ (First flower people)로 명명하였다. 지금도 진달래는 끊임없이 피고 지는데 석회석 채취로 동굴이 없어져 숱한 아쉬움을 남게 한다. 대청호반과 충주호반에는 꽃 잔치의 서막이 오르고 있고 종달새, 뻐꾸기도 합창을 준비하고 있다.

지휘자도 없는 대자연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면 70만 년 전, 금굴에서 살던 구석기인이나 4만 년 전, 두루봉에서 살던 ‘흥수 아이’가 주먹도끼를 들고 봄나들이를 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타임 머신 승차는 꽃바람 좋고 선사 유적이 즐비한 충북산하가 제격이다. 도담삼봉 건너편, 채마밭을 지나면 한반도의 자궁인양 입을 벌리고 있는 금굴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타임 머신을 타고 기록을 남긴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 선교사 이사벨라 비숍 여사였다.

1894년 5월1일, 64세의 비숍 여사는 꽃바람을 가르며 금굴 탐사에 나섰는데 굴 입구에서 88피트(26m)까지 들어갔다고 ‘한국과 그 이웃들’이라는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충북은 선사시대부터 아름다운 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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