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의 빛 과 그늘<하>

신중론“생가복원이 ‘옥천만의 잔캄로 끝나선 안돼”
찬성론“지역 문화재적 자원으로 개발홍보 나서야”

지난 15일 옥천이 지역구인 열린우리당 이용희 의원이 <여의도통신> 기자와 만나 육여사 생가복원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의원은 2월말 기공식 불참배경에 대해 “그 사람들과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 처음부터 참석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참석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 자리에 참석하면 내가 속이 없는 사람이다. 매년 하는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잘라말했다.

지역구 유권자들의 정서법(?)을 무시한채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의원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다. “경제 발전의 공은 있지만 헌정을 중단시키고 독재를 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해마다 8월이면 옥천읍 여성회관 앞 광장 육영수 여사 동상앞에서 추모식을 갖는다. 지난 2001년 이 추모식에 참석했던 모일간신문 기사가 쓴 칼럼내용을 인용해본다.

"옥천군수를 비롯한 지역주민들은 추모시 낭송, 헌화, 분향으로 가신 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나 썰렁한 분위기를 맴돌게 했던 것은 여사의 아들과 딸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략)‘향수의 고장’ 옥천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상주가 없는 장례식장 이랄까. 주객이 전도된 이 날 행사를 지켜보면서 지역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6월27일 고(故)육인수의원(외삼촌) 발인 때에도 그들은 옥천땅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아무리 바쁘고 불가피한 사정들이 있다고 하지만 셋이나 되는 아들 딸 중 한사람쯤은 얼굴을 비춰야하는 것이 지역주민들, 향수의 고장 옥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지난 84년 옥천군의 재정보조로 지역향토사학회에서 간행한 ‘관성향지’는 지역 문화재 및 명소를 집대성해 400쪽으로 간행된 책자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육영수 여사 생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다는 육여사 생가터는 심지어 교동리 마을소개에서도 빠진 상태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법통(?)을 이은 전두환 정권하에서 육여사에 대한 평가가 제약을 받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로부터 10년후 옥천군은 국·도비 등 90억원을 들여 2007년까지 안채와 사랑채 등 3동(건축규모 749.01㎡)과 기념관을 복원하는 기공식을 가졌다. 옥천군의 재정상태로 보아 단일사업비 90억원이면 상당한 규모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육여사의 장남 박지만씨(46)가 10년만에 옥천을 찾아와 기공식 삽을 들었다. 행사장에 나온 일부 주민들은 박씨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언제나 그를 껴안아 주었다.

하지만 복원 기공식이 늦어진 이유는 바로 상속권자인 고 육종관씨 후손 33명의 동의서 때문이었다. 2001년 사업계획을 수립해 곧장 동의서 징구에 나섰지만 16명에 달하는 배다른 형제들은 이미 재산권 분쟁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2002년말까지 22명의 동의서만 받았고 옥천군은 취재기자에게 “후손들의 재산권 다툼으로 이미 문화재로 지정 받은 생가 터 확보가 늦어지고 있다”고 시인했다. 현재까지도 5명의 후손들은 생가터 기부채납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8일 <옥천신문>은 육영수여사 생가복원에 대한 주민토론회를 개최했다. 2월말 기공식 보도이후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찬반논쟁이 벌어지자 신문사측에서 공개토론회를 열게 된 것. 이날 토론장에는 옥천 육씨 문중에서 6~7명이 먼저 자리잡고 앉아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대측 토론자들도 옥천지역 정서를 감안한 탓인지 생가복원 반대입장을 단정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역사적 평가 미흡, 주민 여론수렴 부족 등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이명재목사(청성면 소서교회)는 “복원사업이 관주도로 추진되는 것이 우려스럽고 육여사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역사적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사후 100년 정도는 지나야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가 가능하다. 전국 지자체가 벌이는 지역인물 기념사업이 뒤늦게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면서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육여사도 박 전 대통령과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다고 본다. 생가복원이 ‘옥천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론에 나선 옥천애향회 유현근 회장은 “박 전 대통령 부인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생각은 연좌제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영부인으로써 활동한 육여사를 추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 지역의 문화재적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시간이 갈수록 찬성측의 지역 문화관광자원 개발론과 반대측의 역사적 평가론이 평행선을 달렸다. 옥천군의 육여사 생가복원 사업이 결국 문화재적 가치보다 관광상품적 가치를 겨냥했다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또한 이목사는 관주도 방식의 복원사업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천에서 보재 이상설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먼저 문중에서 앞장서서 모금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예산지원받았다. 옥천군이 행정 편의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대안으로 부분복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착공식까지 마친 상태에서 사업중단을 거론할 시점은 아니라는 점을 못박고, 다만 육영수 여사에 대한 세인들의 추모와 관심이 장기적으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규모 생가 복원보다는 연계된 관광벨트 조성계획에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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