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사람의 마음까지도 이어준다. 콰이 강의 다리는 밀림의 요새를 이어주는 다리인데 비해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열연한 ‘워털루 브리지’(애수)나 황야의 무법자 터프가이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엔 연인들의 못 다한 사연이 새겨져 있다. 무심천을 가로지르는 2천년의 돌다리, 남석교(南石橋)엔 청주의 역사와 숱한 연인들의 사연이 발자국마다 아로새겨져 있건만 도시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일제가 땅 속에 묻어 지금은 볼 수 없는 잊혀진 다리가 되었다.

밀레니엄을 두 번씩이나 머리에 이고 서도 군말 하나 없이 무심천의 세찬 물살을 견뎌내며 냇물 언덕 이쪽 저쪽을 연결하였는데 일제가 돌연 땅에 묻고 나니 그 진면목을 다시금 볼 수 없고 광복 후에도 여전히 신음소리를 내고 있으나 땅 값 등 여러 가지 상황변화로 이를 복원치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육거리 재래시장 간선도로를 따라 청주읍성으로 진입하던 그 돌다리는 청주읍성이 헐린 후 20년 만에 지하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석교의 매몰을 따라 민초의 애환과 남녀의 로맨스도 어디론가 증발되었다. 남석교 건너 분평동 근처에는 관리들이 지방 출장시 묵었던 정진원(情盡院)이 있었다. 정진원에 묵고 있던 성제원(成悌元,1506~1559)은 당대에 이름난 유학자였다. 그를 연모한 청주관기 춘절(春節)은 갖은 교태로 유혹하였으나 성제원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산천을 유람하며 정신적인 사랑만 나누었으니 요즘말로 치면 ‘플라토닉 러브’를 고집한 셈이다. 이 커플이 남석교에서 데이트를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청주 일대를 유람하고 그림을 그리며 사랑의 언약을 대신했다는 고사로 보아 몇 번쯤 남석교를 오가지 않았겠는가. 정월대보름이 되면 민초들은 이 다리를 자기 나이 숫자대로 건너며 건각(健脚)을 다졌는데 이게 바로 ‘남석교 다리밟기’다. 오곡밥을 먹고 풍장을 치며 다리를 오간 것은 터를 밟는다는 주술적 기능과 더불어 필수 영양소의 보충과 운동으로 성인병을 에방했던 것이다.

남석교에 대한 발굴조사는 여러 번 실시되었으나 땅 속에 묻힌 관계로 전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청주대 건축학부 김태영 교수가 최근 실측한 결과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남석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일 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가장 긴 돌다리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남석교의 길이는 64m, 58m 등 제 각각이었는데 이번의 실측에서 80.85m 측정치가 나왔다. 그 이전에는 한양대 앞의 ‘살곶이 다리’가 70m로 가장 길고 남석교가 두 번 째로 길다고 했는데 이번 실측은 그 같은 이야기를 뒤집으며 최대의 돌다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923년, 일인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이 쓴 청주연혁지에는 남석교가 한(漢)나라 선제(宣帝) 오봉원년(五鳳元年)에 건립됐다고 하는데 오봉원년은 박혁거세 즉위원년, 즉 BC57년이다. 그러나 돌다리의 양식은 대부분 고려 양식이다. 여러 번 보수를 한 것이다. 남석교 네 귀퉁이에 있던 두 쌍의 돌다리 중 한 쌍은 청주대 경내 용암사에 있고 다른 한 쌍 중 하나는 충북대박물관에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실종되었다.
/ 언론인·향토학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