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감동을 넘어 차라리 눈물이 되었습니다. 1960년 4월혁명 을, 아니 1919년의 3·1운동을 연상시키는 전 국민적 ‘궐기’입니다. 스탠드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안방에서, 그리고 방방곡곡에서 수 천만개의 입이 하나가 되어 외치는 소리 ‘대∼한민국!’. 우리 국민들이 이처럼 한 덩어리가 되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하나의 용광로 속에서 용훼돼 이글거리는 쇳물이 되었습니다. 끓는 솥에는 남북도 없고 동서도 없고 지연(地緣)도, 학연(學緣)도, 혈연도, 세대도, 빈부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민족, 그리고 또 하나 ‘대한민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누가 가슴을 달구지 아니하고 누가 감동의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날 나는 보았습니다. 감격의 8·15해방도 보았고 6·25의 피난행렬도 보았고 4·19혁명의 성난 군중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71년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김대중의 100만 남산 유세도, 80년 ‘서울의 봄’때 서울거리를 뒤덮은 민주화 대열도 보았고 구름처럼 운집했던 87년의 ‘6월 항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4500만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덩어리가 된 것은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피가 머리로 솟구쳐 올랐고 심장이 멎는 듯 했습니다.
월드컵은 위대합니다. 아니 축구는 위대합니다. 이것이 아니고 그 무엇도 우리 국민을 이처럼 하나되게 할 수는 없었기에 말입니다. 그 어느 출중한 지도자도 이처럼 온 국민을 하나로 묶지는 못했습니다.
원래 국토도 하나, 민족도 하나입니다. 수 천년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통치자들이 그것을 둘로, 셋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남과 북을 가르고 동과 서를 가르고 지역과 지역을 갈랐습니다. 네 학교, 내 학교를 가르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랐습니다. 애시당초 모든 것이 하나였지만 정치하는 자 들의 야욕이 국토를, 민족을 사분 오열 시켜놓은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국위선양, 경제적 이득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에서도 국민적 대 통합을 이루어 낸 것이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뜻 있는 젊은이들의 자생조직인 ‘붉은 악마’는 일시적이나마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습니다. ‘붉은 악마’야 말로 축구를 통해 흩어진 국민을 하나로 묶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칭찬을 한다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유념할게 있습니다. 우리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이 행여 외국인들에게 집단 히스테리나 비뚤어진 민족주의로 잘못 비쳐질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열광하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월드컵은 월드컵 일뿐이며 보고 즐기는 스포츠라는 것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자칫 상대국을 자극하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어리석은 일은 피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자면 흥분을 가라앉히고 성숙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지요.
이제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분출된 국민적 에너지를 한 군데로 모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것을 남북이 하나되는 통일대업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보여야 하겠습니다. 7000만 겨레가 하나 될 때 우리는 16강이 아니라 4강도 확신 할 수 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살지, 그게 걱정입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지난 호 본란 중간내용중 일부가 편집과정의 오류로 뒤바뀌었습니다.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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