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전에 어렵게 배낭여행 형식을 빌어서 간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곳에서 느꼈던 이상한 일들 중 하나는 농촌마을이나 시가지나 우리들에 비해서는 다들 조용하다는 것이다. 몇몇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차라리 조용하다 못해 적막이 감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 걱정은 ‘저러고도 먹고 살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곳 대부분 나라들의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있었으니 내가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이해하기 까지엔 나름대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했다. 즉 거꾸로 보면 우리가 너무 바빴던 것이었다. 저임금을 찾아 동남아로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처음으로 겪는 어려움은 그들과의 노동문화 차이였다. 그들은 만일 보름 일해서 한달을 살 수 있다면 보름만 일하고 나머지 보름은 회사에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의 연속성을 가질 수 없었고, 당연히 단위당 임금이야 낮지만 작업의 공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없으니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러니 못살 수밖에 없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
‘주5일근무제’가 초미의 화두로 나타나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는 판국에 일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나, 만일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을 삭감한다면 그 역시 당사자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주 36시간(금요일 4시간)근무까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굳이 그들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주5일근무제 역시 어느새 이미 대세인 듯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매주 이틀씩을 정기적으로 놀게 된다면, 해방이후 사라졌던 척박한 놀이환경 문화에서 어떻게 일과 여가시간을 조화롭게 보낼 수 있을까? 놀아본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어찌되었건 급격한 소득증대를 수반하지 않는 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는 비용소모보다는 시간 소비적 여가를 보내는 새로운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초기에는 지금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점차 창조적인 여가문화 소비패턴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테마형 관광시설은 물론 그와 연계한 숙박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에 하루씩 쉬는 지금도 가까운 자연휴양림 예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데 말이다.
월드컵 때문에 야단법석이다. 월드컵경기장은 물론이고 광화문네거리, 호프집, 아파트촌은 물론이고, 느낌상 정적과 고요가 어울릴 법 한 고요한 산사(山寺)에서 조차도 울고 웃으며 온통 흥분의 도가니인 걸 보면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은 법석인 모양이다. 매운 고추장과 김치로 다져진 화끈하고 뜨거운 민족성과 딱 들어맞는 축제임이 분명하다.
이번 월드컵경기가 우리의 새로운 놀이문화 창조에 얼마나 기여할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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