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이 지난 강줄기 위로 힘차게 물길을 차고 오르는, 청둥오리의 날갯짓에 봄빛은 쏟아지는데,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에 매달려, 하고 싶은 말 가슴에 묻어둔 채 강 언덕에 서 있는 갈대의 모습이 슬픔처럼 내 가슴을 적셔왔다.

강줄기는 오던 길,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지 끊임없이 흘러간다. 내 마음은 이런 것이었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에 꼭꼭 눌러 놓고 그 아쉬움에 후회하며 그렇게 겨울 속에서 또 다른 봄을 기다리며 우리는 기다리는 일에 늘 익숙해져간다. 저녁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 또 다시 떠오를 태양을 그리 듯,살아간다는 일은 그렇게 기다림을 키워 가는 일일 것이다. 기다려 줄줄 안다는 것은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 할 수 있어야한다.

강줄기 군데군데 모래더미의 작은 둔덕들이 만들어져 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하리라고 미리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 속에서 절로 만들어 진 모습들이다. 그들을 에둘러 흘러가야 하는 강물은 너무 힘겹다. 또 다른 삶의 영역을 강물은 돌아서 흐르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고통과 아픔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나누는 삶,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피워내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사랑은 요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맞는 일처럼, 고요히 흐르는 강의 속살처럼, 산 중에 옹달샘처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런 것이다.

그 사랑의 품에서 어둡고 추웠던 겨울 강에 서걱대던 갈대의 외로운 고뇌는 강물로 흐르고, 삶의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 있는 겨울 강가엔 청둥오리의 자맥질로 봄빛이 밤하늘의 별 빛처럼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강가에 서서 강물 속으로 지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침에 뜨는 태양은 생동감 넘치는 활력이 있고 저녁에 지는 해는 겸손하고 여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굳이 입으로 말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믿어주고 끝없이 기다려 주는 마음의 빛깔이요 향기이리라.

강 건너 산 넘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향긋한 내음이 들어있어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출렁이는 겨울강가, 그곳엔 시나브로 봄이 그렇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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