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북한 실존 파동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지난 2001년 9월 20일 밤 KBS-1TV가 ‘북한리포트’를 통해 인민대학습장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소장한 ‘만년달력’ ‘대동여지도’ 등 고서와 함게 ‘직지’가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방영한 바 있다.

이 프로는 KBS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조선 중앙TV가 촬영한 것이어서 KBS의 판단과 잣대라고 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북한의 주장대로 직지 진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직지는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여 배달겨레가 공유해야할 빛나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북한이 주장한 직지는 진본으로 볼 수 없다.

우선 TV를 통해 방영된 직지 겉 표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 하권의 글자체나 책제목이 똑같다. 직지 하권은 오랜 세월의 틈바구니서 겉 표지가 떨어져 나가 중간 소장자가 다시 겉 표지를 만들고 책 제목을 붓글씨로 다시 써넣은 것이다.

그것도 고려시대가 아닌 조선시대에 책 장정을 다시 했다. 처음 인쇄 때 책 장정은 어떠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다른 직지는 이와 다른 모습의 제호와 장정을 갖추고 있으리라 판단된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소장자 임의로 다시 써넣은 직지 책제목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직지찾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큰 넌 센스다. 두번째로는 책장이 너무 깨끗하다는 점이다.

세월의 손때가 잔뜩 묻은 형태가 아니라 금방 인쇄한 듯한 상태로 보관돼 있다. 이로 보아 북한의 직지는 진본이 아니라 영인본이 확실하다.

그로부터 4년 후 북한의 직지 진본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정종택 충청대 학장이 지난 2002년 5월28일 남북태권도 교류차원에서 북한을 방문했다가 묘향산 보현사에서 직지를 목격하고 이를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우선 이 사진에서 보이는 종이는 고서가 아니라는 점을 비전문가도 금세 알 수 있다. 보관상태가 너무 깨끗하다. 또한 간기에 찍힌 붓두껍 무늬가 프랑스 국립박물관 소장 직지와 똑같다. 이 붓두껍은 충청리뷰의 보도내용대로 인쇄당시의 자국이 아니라 후세 소장자가 특정문구에다 임의대로 표시해 둔 것이다.

북한 보현사의 직지는 김영진 전 청주대교수의 지적대로 글자의 번짐 등으로 보아 1973년 첫 영인작업을 벌일 때의 것이 거의 확실하다. 청주대는 문화재관리국의 영인본을 1986년 흥덕사지 발굴조사당시 재 영인 하였고 문화재관리국은 주불문화원의 협조를 얻어 1987년 직지 원본을 해체하여 칼러 슬라이드로 촬영, 영인본을 다시 만들었다.

그후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97년, 98년에 영인본을 제작하였다. 2000년 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계기로 청주고인쇄박물관은 현지로부터 컬러 슬라이드를 확보하였으나 진본을 해체한 상태에서 찍은 것이 아닌 꿰맨 상태의 슬라이드여서 이를 토대로 한 영인본은 제작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직지 영인은 흑백, 컬러를 포함하여 7~8차례에 달한다. 북한에 있는 직지는 초창기 흑백 영인본이다. 직지를 초록한 백운화상이 한때 성불사에 머물렀으니 그 성불사가 만약 해주의 성불사라면 북한의 직지 존재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는 여러 성불사가 산재하고 있어 백운화상이 기거했다는 성불사를 현재로서는 찾기가 어렵다. 괴산에도 성불사가 있으나 이 절이 고려 때 백운화상과 연관이 있는 사찰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북한에 직지 진본이 있다면 범 민족적으로 축하할 일이나 이는 희망사항인 듯 싶다.    / 언론인·향토학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