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前 대통령 "청오 정춘수 묘" 비명 내려

▲ 1969년 8월15일 세워진 정춘수씨의 청원군 강내면 묘비이다. 이 묘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을 쓰고 정씨의 두번째 부인 안동 임씨와의 사이에서 3자1녀를 두고, 딸(1녀) 정화숙의 남편 김상기(문학박사)씨가 비문을 쓴 것으로 돼 있다. 친일 대통령이 쓴 현판을 독립운동가 윤봉길 선생의 사적지(충의사)에 걸 수 없다며 충남의 전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이 삼일절 날 현판을 부수면서 사회적 큰 파장이 인 가운데 친일파로 알려진 정춘수씨의 묘 비명을 박 대통령이 쓴 것으로 확인 돼, 또다른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지역에서도 지난 3일자 충북인뉴스 인터넷 신문을 통해 보도 된 바와 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내걸린 문화유적지 및 공공시설은 모두 4개소이다. 그 중에서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삼일공원에서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충북을 대표하는 3.1운동 민족대표 6인의 동상 중 철거된 정춘수씨의 묘비명(청원군 강내면)이 친일 논란을 낳고 있는 박 대통령에 의해 쓰여진 것이 뒤늦게 확인 됐다.청원군 강내면 은적산 자락에 위치한 정춘수씨의 묘비는 1951년 10월27일 향년 7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뒤 민관이 함께 모여 민주공화당 충청북도지부가 세운것으로 돼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명을 쓰셨다"는 글이 선명하게 씌어져 있다.

즉, 지난 69년 8월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청오 정춘수 선생의 묘'라는 비명과 당시 건립 추진위원장이었던 박대통령의 처남 육인수 국회 문광위원장의 사적, 그리고 문학박사 김상기씨가 쓴 정춘수 선생의 일대기를 높이 2.5m 폭 60㎝ 가량의 흑색돌에 적고 있다.

이 비문은 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가 한국전쟁당시 피난길에 머물던 청원군 강외면 궁평리에서 향년 77세의 나이에 정춘수씨가 죽은 뒤 18년 만에 민관이 함께 모여 민주공화당 충청북도지부가 세운 것으로 돼 있다.

특히 비문에는 정춘수 선생의 탄생(고종 을해년, 서기 1875년 2월11일)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간략히 설명하면서 감리교회 목사로서의 포교활동과 민족주의 운동 중 치른 옥고에 대해 간력히 설명하고 있다.

감리교 목사 정춘수씨는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지역의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권동진, 신홍식 선생과 함께 청주시 우암동 우암산 자락에 위치한 삼일공원에 동상이 세워졌으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지난 96년 2월8일 2.8독립선언 77돌에 맞춰 '충북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공동대표 정진동 목사·도종환 시인)'라 불리던 한 시민단체에 의해 철거됐다.

당시 시민단체 사무처장을 지낸 바 있는 이광희씨는 "순천에 사는 한 감리교회 목사님이 자료를 제공 하면서 정춘수씨의 친일행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친일청산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실현코자 어렵게 철거 된 동상은 청주시청에서 보관중인 것으로 안다. 따라서  현재 5인의 동상만이 삼일공원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정춘수 친일행각은(?)##

민족문제연구소 청주지부(지부장 김진한)에 따르면 청주출신 정춘수씨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해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1938년 5월에 흥업구락부 사건(민족주의운동·질서유지)에 연루돼 수난을 겪다가 같은 해 9월 '전향성명서'를 발표했다. 전향발표후 일제의 비호아래 조선감리교회 제4대 감독으로 친일행적을 벌인다.

1940년 10월에 '감리교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일본정신 함양과 일본 메소디스트 교회와 합동 일본 복음의 천명을 규정하고 애국반 활동 강화와 교회 신도로 하여금 지원병에 다수 참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41년 10월과 42년 2월에는 교회의 철문, 철책, 교회 종도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정씨는 44년 9월 감리교단 교역자들을 남산 등에 모아놓고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일본경찰의 비밀조직인 '총진회'의 회장을 맡아 보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친일행적으로 논란을 빚은 정씨는 또한 41년 초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그 해 10월은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맡았으며 44년께 그 나머지를 다 팔아 신사참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으며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올라 청원군 강외면 궁평리에 머물다가 1951년 10월27일 79세로 생을 마감했다.

▲ 3.1운동을 기념해 충북이 낳은 민족대표 6인을 모신 삼일공원의 정경이다. 현재는 친일행정이 드러나면서 시민단체에 의해 정춘수 동상이 철거된 채 5인만이 모셔졌다. ##대통령·친일독립운동가 비문## ▲ 지난 96년2월 청주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의 노력으로 17년간 3·1공원에 자리잡고 있던 친일 친일파 정춘수 동상이 강제 철거됐다. 정부로 부터 독립유강자로 공인받지 못한 친일인사의 동상을 사적공원에 건립한 자체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정춘수씨의 묘소가 있는 청원군 강내면 은적산의 정상에는 단군상이 있다. 한 민족의 아버지로 알려진 단군왕검상이 친일파의 종중 땅 정상에 모신것도 아이러니지만 그 옆으로 동학운동가 정필수 선생의 묘소가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굴곡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강내면 은적산 자락에는 정씨의 후손이 현재 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거명치 말아 달라며 그가 말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아픔이 있는 상황에서 친일을 하지 않고 제대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친일 대통령 박정희가 내린 비명이라 생각하지 말고 국가가 내린 비명으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충청북도에 내려진 전직 대통령 휘호는 모두 7개소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3개로 가장 많았다. 박대통령의 글씨는 지난 78년도에 사적 제189호 임충민공충렬사(충주시)의 사당현판과 75년 독립운동가 신홍식 선생(청원군)의 비문, 같은시기에 정춘수 선생의 비명이 있다.

이 밖에 1955년 이승만 전대통령이 쓴 충혼탑(충주시), 1982년 최규하 전대통령이 쓴 충북 기념물 51호 고봉정사내 정사내 사당(보은군), 1958년 윤보선씨가 쓴 충북 기념물 제33호 정인지 묘의 신도비(괴산군), 2000년도에 노태우 전대통령의 충북기념물 제 73호 채화당사 현판(청원군)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