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루 너머로 남한강이 흐르는 단양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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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화루 너머로 남한강이 흐르는 단양향교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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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봉안한 대성전과 강학하는 명륜당으로 나뉜다. 이는 향교가 본래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봉향과 함께 지방의 유생들에게 강학하는 교육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단양향교는 1415년(태조 15년)에 단양군수 이작이 단양군 중방리에 처음 창건하였다. 명종초 퇴계 이황이 군수로 있을 때 향교를 현재의 상방리로 옮겼으며, 군수 황준량이 명륜당을 세웠다.

▲ 명륜당 현재 단양향교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서무·동무·신문(神門)·명륜당·진덕재(進德齋)·수엽재(修葉齋)·제기고·고직사·풍화루(風化樓)·홍살문 등이 있다. 총 건물 규모는 1곽 7동 98평이며, 조선시대 향교의 건축 양식이 잘 갖추어져 있다.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경사면을 서남향으로 2단으로 정지한 후 안담장에 내삼문을 두어 성현에 제사를 지내는 배향공간과 학생을 가르치는 강학공간으로 이등분되어 있다. 홍살문을 지나 첫째 단을 오르면 외삼문 대신 풍속을 교화한다는 뜻의 풍화루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 풍화루를 지나 좌측으로 명륜당이 배치되어 있고 명륜당 맞은편의 동재는 부속사와 연결되어 있다. ▲ 대성전
첫째 단에서 15단의 계단을 올라가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내삼문이 있고, 그 뒤로 좌·우 측면에 대칭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서 양무가 있다. 풍화루와 내삼문이 중심축을 이루며 대성전이 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나 서원의 정문을 외삼문이라 하는데 정면 3칸의 솟을대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별도로 경내에 건축을 두어 강학공간으로 조성한 곳도 있으나 일반적인 교육 기관 안의 누 건축은 정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양향교의 풍화루도 이 경우에 속한다. 강학중 주변경치를 둘러보며 쉬는 역할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삼문은 배향공간과 교육공간 사이를 통하는 문으로 상대적으로 외삼문보다 작다.

내삼문은 중앙에 정문이 있고 그 좌우에 좁은문이 있으며 출입을 할 때는 동문(밖에서 볼 때 오른쪽)으로 들어갔다가 서문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나오고 그 안에는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공자를 중심으로 양편에 안자·증자·자사·맹자 등 4성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서 양무에 송조 6현, 10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향교전경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제를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전교 1명에 장의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전적은 판본 5종 42책, 사본 11종 15책이 있으며, 특히 『서재유안』, 『향계절목』, 『청금록』, 『향교서재안』, 『향교위전답안』 등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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