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 시민운동을 이끌고 있는 박일선씨가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모 방송국이 주최한 도지사후보초청 토론회의 패널로 나가기 전에 충북도와 충주시 공무원으로부터 이원종 전지사에 대한 질문내용을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관권선거로 규정, 전후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구설수에 오른 공무원들은 그의 고등학교 동기와 선배다.
이 소식을 접한 필자는 여러 생각중에서도 한가지를 쉽게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다. 고등학교 동기와 선배를 팔아 먹었으니(?) 그에게 다가 올 돌팔매질이 눈 앞에 선하다. 그러잖아도 그는 행정기관이나 지역의 잘난 사람들한테 오래전부터 미운털이 박힌 처지였다. 사사건건 쓴 소리를 해대는 시민운동가를 곱게 봐 줄 리가 없다. 때문에 주변엔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부류도 많다.
아직도 시민운동에 대해 버거움을 갖는 주변인들의 편의적 해석이 그에게 부정적 딱지를 붙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또 이를 실천하려는 그만의 ‘고집’이 사실 주변에 부담을 준 탓도 있다. 그래서 시민운동 초기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어쨌든 그는 순수한 사람이다.
96년 12월로 기억한다. 경북 상주군이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을 강행하려하자 괴산군 청천면 주민들이 현지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워 감시한 적이 있다. 그 때 박일선씨는 머리를 삭발하고 현장에서 죽음을 각오한 단식투쟁을 벌였다.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단식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컨테이너 안에서 담요를 두른채 눈만 휑하니 뜨고 있는 그에게 “뭣하러 이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실천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나 박일선씨는 그 때의 우휴증으로 지금도 각종 약을 상복하고 있다. 생각을 실천한 만큼 대신 몸이 망가진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있는 이문옥씨는 90년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상부의 지시로 부당하게 중단되자 양심선언한 후 구속됐다. 처음 그에게 고통스러웠던 것은 감옥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의 ‘왕따’였다. 우리나라 내부 고발자의 원조격인 그는 얼마후 청주를 찾아 강연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차라리 감사원의 직원이 아니었다면 나도 평범한 공무원이었을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나는 모든 모순과 자기번민에서 비로소 헤어날 수 있었고, 감옥에서 느꼈던 육체의 고통은 내가 진실을 말하기 전까지 경험한 마음의 굴욕감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박일선씨는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또 한번 결정적으로 미운 짓(?)을 했다. 그러나 그가 일부 주변으로부터 받을 싸늘한 눈빛은 가식(假飾)된 양심보다 훨씬 더 명징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후배에게 뒷통수를 맞은 선배는 전화를 걸어 오히려 박실장을 격려해 줬다. 이렇듯 배신감과 서운함을 대승적으로 승화시킨 것도 시민운동가의 양심선언 못지않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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