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을 입구에 서서 사시사철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장승은 액막이와 더불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고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 조형물이다.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불거진 입, 코는 경외의 대상이긴 하나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헤살 맞게 장난을 치는 도깨비가 생활 속의 벗(?)으로 용해되듯 장승 또한 두려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장승은 우리네 마음과 얼굴의 또 다른 변용(變容)이요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통로 구실을 한다. 밤새도록 도깨비와 씨름을 했는데 아침에 보니 장승이었다는 설화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네 공동체 의식을 잘 말해준다.
장승은 늘 거기 있으나 의식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의 일상을 보살펴주는 신앙의 동선(動線)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거목(巨木)의 문화 이전에는 거석(巨石)의 문화가 의식세계를 지배하였다. 그 대표적인 신앙이 바로 청동기 시대의 선돌이다. 선돌은 신앙의 대상이 되고 부족의 세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이정표나 경계 같은 랜드 마크(Land Mark)의 기능을 가졌다.
역사시대로 접어들며 선돌은 돌장승이나 나무 장승, 솟대 등에 그 기능을 전수하며 맥을 이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전래된 불교신앙과 접합하여 돌미륵, 돌장승(벅수), 하루방 등 지역에 따라 변형된 거석, 거목의 문화를 파생시킨다.

영호남 지역에 돌장승이 많은 반면 충청도 지방에는 나무장승이 많다. 그 나무장승은 선돌시대의 유습에 따라 '수살장군' '수살막이' 등으로 불리며 동네를 지키고 있다. 장승의 의미도 여러 가지다. 풍요와 다산, 마을의 안녕, 액막이의 역할을 주로 하지만 오가는 길손 손짓해 주는 이정표의 구실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녘을 오가는 보부상이 장승을 만나면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승은 별신굿 등에 등장하지만 대체로 정월 대보름을 맞아 깎아 세우고 제를 지내는 게 통례다. 소나무나 산 오리나무를 주로 선택하는데 곧은 나무보다는 구부정한 나무를 고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나무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이용하여 눈, 코, 입, 귀를 자연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승은 깎는다는 조각의 개념보다 자연적인 나무에 얼굴모형을 그려 넣는다는 개념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채색도 가급적 삼갔으며 단순히 먹물로 형상을 그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제작되는 장승은 그리는 개념이 아니라 조각의 개념이 강하다. 툭 불거진 눈망울, 쭉 째진 입과 과장된 이빨, 붉은 혀 등 장승의 형상 표현이 강해지고 있다. 장승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나 이러한 형태는 우리 것보다 일본 도깨비에 가깝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장승을 깎아 세운다. 그들의 장승은 우리 것보다 강렬하다. 신체부위를 양각으로 뚜렷하게 표현하고 채색도 요란하다. 그들의 장승은 부족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청주 월오동에는 가장 한국적인 장승이 전통적 기법으로 제작되어 왔는데 요즘엔 조각 장승에 밀려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 향토학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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