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문화가 숙성, 청주문화 원류 빚어 <임병무>

삼국과 청주 삼국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기 이전에 청주지역은 마한(馬韓)의 영역이었다.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기 이전, 한반도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삼한(三韓)이 있었는데 청주지역은 마한에 속해있었다.

 마한은 부족국가 연맹체로 54개국이 있었고 그 우두머리 국가를 월지국(月支國) 또는 목지국(目支國)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충북도민의 노래'에 보면 첫 구절에 '역사의 혼이 깃든 마한의 옛 땅'ㅍ으로 시작하고 있다. 청주의 관문에 있는 부모산(父母山)을 아양산(我養山)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곳에는 마한에 속한 '아양국'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삼한시대를 다른 말로 원삼국(原三國), 또는 초기철기 시대라고도 부른다. 원삼국이란 삼국의 강력한 왕권이 생겨나기 이전, 태동기를 말하며 초기철기 시대란 생활용기의 사용에 따른 분류다.  

▲ 청원군 비중리 일광 삼존불 원삼국의 흔적은 청주지역에 유난히 많다. 제 3공단 옆 '송절동 원삼국 고분' 에서부터 '신봉동 이른 백제고분' 까지는 역사의 벨트처럼 고분군이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봐도 원삼국과 이른 백제로 연결되는 고분이 이처럼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은 청주가 유일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청주가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모산, 우암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금강 상류인 미호천 변에 기름진 퇴적층과 산간분지가 이어지니 어찌 이곳을 탐내지 않았겠는가. 오늘날 충청도를 가리켜 청풍명월(淸風明月) 고장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하늘이 열리던 태고적부터 소백산맥, 차령산맥을 굽이치는 남한강, 금강이 아름답고 기름진 땅이 널려 있으니 자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씨가 넉넉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연 풍광이 빼어나니 바람소리가 시원하고 강물에 뜨는 달 또한 밝고 밝았으리라... 그래서 선조들도 이 지역이 무공해 청정지역임을 일찍이 눈치챈 것 같다. 봉명동 준공업지역서 충북대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문화유적을 보면 구석기부터 신석기, 청동기, 원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는 광범위한 유적이 시대를 차례로 훑어보기라도 하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시대폭이 이처럼 넓다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비옥한 땅, 미호천을 중심으로 인류가 정착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집터와 함께 원삼국 시대의 목관묘, 고려, 조선시대의 토광묘 등 2백47기나 발굴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중 말방울로 보이는 청동제 소동탁(小銅鐸)에는 '大吉'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고분의 편년이 4세기초여서 남한내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으로 여겨진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송절동 원삼국 고분군이 1~2세기이고 신봉동 백제고분군이 3~5세기인데 봉명동 고분군중에는 3~4세기의 고분군이 상당수여서 송절동~신봉동 고분의 고리역할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신봉동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속이 깊은 바리형 토기, 쇠뿔 손잡이가 달린 토기, 그리고 오늘날 5백cc~1천cc 맥주 컵을 연상케 하는 토기 등 다양한 모습인데 시대가 같은 다른 지역과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관련학계에서는 이를 '신봉동식 토기'로 명명하였다. ▲ 쇠뿔 손잡이가 달린 신봉동식 토기
청주지역의 원삼국 문화는 강력한 철기집단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한다. 이른 백제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차지한 것이다. 신봉동 철기유물이 말해주듯 쇠갑옷, 환두대도(손잡이에 둥근 고리가 달린 긴칼로 지휘자용 인 듯), 창, 화살 등으로 무장한 기마집단에 대해서 동검(銅劍)정도로 무장한 원삼국 문화가 배겨날 재간이 없었다.

중부매일신문사 앞에 있는 신봉동 백제고분에서는 원삼국의 토기와 철기문화가 함께 출토된다. 산 기슭 부분에서는 원삼국 문화를 말해주는 여러 가지 모양의 토기가 나오고 산 윗쪽으로 올라갈수록 철기문화가 나타난다.

마한의 맥을 이어 백제가 이 지역을 통치한 것이다. 백제는 이 지역을 상당현(上黨縣)이라했다. 그러나 백제의 통치는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427년, 장수왕은 수도를 집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하고 소위 서수남진(西守南進)정책을 펴게된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백제 비류왕과 신라 눌지왕은 이른바 2차 나제동맹(羅濟同盟)을 맺으며 연합전선으로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한다.

 그러나 나제동맹에도 불구하고 장수왕은 475년, 한성백제를 공략하여 백제의 수도를 빼앗는다. 고구려의 세력은 한때 조령, 죽령 등 소백산맥 기슭까지 미쳤다. 고구려의 지배아래 있을 당시 청주의 이름은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 낭성으로 불리웠다.

신라 진흥왕은 북진정책으로 맞서며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으나 고구려는 영양왕 19년(608) 신라의 북변을 쳐서 낭비성(청주)을 탈환하는 등 밀고 당기는 싸움은 계속됐다. 나제 동맹의 협력관계에서 진흥왕은 북진정책을 펴 한강 유역을 확보했고 낭성(청주) 등을 차지했다.  신라 진평왕 51년(629) 8월에 있은 낭비성 싸움은 유명한 전투다. 장군 김용춘(金龍春)과 김서현(金舒玄) 김유신(金庾信) 부자가 전투를 이끌었는데 김유신은 단기필마로 적진에 쳐 들어가 적장을 베어 불리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고 그 결과 낭비성(청주)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청주는 신라에 속했고 신라의 통치기간이 가장 길었다. 이 때문에 우리 고장에는 신라계통의 유적 유물이  가장 많으나 백제 유적 유물도 상당수에 달하며 고구려 계통의 유물도 간과할 수 없다. 일예로 청원군 북일면 비중리에 있는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은 신라와 고구려의 기법이 혼합돼 있고 충주 봉황리 마애불은 고구려의 체취가 진하다. 국보 제 205호인 '중원고구려비'는 충주지역 일대가 고구려의 영토였음을 말해준다.

신라가 청주지역을 차지한후 진흥왕은 낭성(娘城:청주)에 순수하여 우륵을 행재(行在) 하림궁(河臨宮)으로 불러 가야금을 연주케 하였다. 그 다음해(552) 우륵을 국원(國原:충주)에 살게하며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가요를, 만덕(萬德)에게는 무용을 가르치게 했다. 하림궁이 청주인지, 충주인지는 불분명하다. 통일신라시대 청주의 지명은 서원경(西原京)이었다. 685년, 신라가 5소경을 둘 때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다가 4년후 서원경이라 불렀다. 삼국의 각축에 따라 청주는 상당현에서 낭비성으로, 또 서원경으로 역사의 뜀박질을 계속했다.

후삼국시대 청주지역에는 또다시 전운이 밀려온다. 조선시대,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史蹟記)에 의하면 궁예는 상당산성을 쌓고 견훤은 작강(鵲江:까치내)변에 토성(정북동 토성)을 쌓아 서로 대치하였다고 하는데 얼마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실시한 상당산성 서벽 발굴조사에서 궁예가 활동하던 9세기말의 성벽을 새로 찾아냈다.

   
▲ 신봉동 백제고분출토 토기 및 철기류
궁예는 어린시절 청주, 구라산성(구녀성)아래에서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가 태봉국을 건설할 당시 청주사람 1천호를 수도인 철원으로 옮기는 이민정책을 폈는데 당시 청주인구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1천호의 이주는 대단한 역사(役事)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만드는데 있었던 것 같다.

문의(文義)의 양성산성은 신라계통의 산성이나 백제 계열의 토기편도 여기서 출토된다. 후삼국시대 후백제의 길환 장군이 고려 유금필 장군의 공격을 받아 양성산성에서 전사하였다.  문의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심하게 다투던 쟁패지역이다. 5세기경 청주는 백제의 영토였다.청주 신봉동 백제고분이 말해주듯 청주는 이때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지리적으로 청주보다 백제에 더 가까웠던 문의가 신라의 영토였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문의 미천리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은 신라 계통이다. 그리고 2001년 12월, 충북대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부강의 남성골 산성에서는 고구려의 계열의 토기와 구돌이 중점적으로 출토됐다. '몸통이 긴 항아리(평저장동옹 토기)', '가로띠 손잡이 토기' 등은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다. 고구려가 금강상류까지 남하한 흔적들이다.

청주를 포함한 충북지역에 유난히 산성이 많은 것도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연유한 것이다. 솥발처럼 선 삼국의 정립(鼎立)지대, 청주와 충북은 이렇게 삼국의 문화가 혼재되고 숙성된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충북문화의 원류인 셈이다.      /<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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