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과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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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과 한나라당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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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덕 현 (본집 편집인)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이 요즘 며칠동안 인터넷에서 정치인 검색순위 1, 2위를 다퉜다.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고 지난 17일의 호텔방 소동 때문이다.

정의원이 밤 시간에 40대 유부녀와 한참동안 호텔방에 투숙했다고 해서 꼭 그 짓거리(?)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둘이 만나 정치를 논할 수도 있고, 아니면 호텔분위기에 걸맞게 세련된 인생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마침 자녀 2명을 둔 그 40대 여자가 대학교수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선의적 해석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돼야 가능할 것같다.

구입을 요청한 묵주 100여개를 받기 위해 호텔방을 찾았다는 정형근의 초기 해명이 그렇게 옹색할 수가 없다. 이런 물건이라면 호텔방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건네 받을 수 있다. 마광수교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내용보다는 우선 제목때문에 혼쭐이 났다.

한국사회에서 여관방이나 호텔방은 여전히 묘한 여운을 준다. 우리나라 공당의 간판인 정형근이 이 점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런 실수는 안 했을 것이다. 할말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일단 남녀가 호텔까지 동행하면 ‘상황날으로 여긴다.

당시 호텔방 소동을 뉴스로 접한 많은 사람들은 역시 아리송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의도된 것도 아닌데 긴박한 분위기의 TV화면을 지켜 보는 순간 그에게 붙여진 시국사건조작이니 고문기술자니 하는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음은 당연지사다. 한 땐 그의 말 한마디가 정국을 요동시켰고, 그한테 고문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지상최대로 모골이 송연했다고 말할 정도로 ‘위엄’이 엄청났다는데, 이날 호텔방을 황급히 빠져 나가는 정형근의 모습은 마치 춤바람난 족속들이 단속에 걸려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치던 7, 80년대 카바레 정경을 연상시켰다.

호텔방에까지 카메라를 들이 댄 보도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과거 기획수사의 최고 달인이자 야당의 골수 저격수였던 그가 되레 엉성한(?) 남자한테 미행당해 망신을 겪은 것은, 참으로 묘하고도 기막힌 감흥(!)으로 다가 왔다. 이는 카타르시스인지도 모른다. 박종철고문치사 은폐공작의 책임자에다 89년 서경원에게 세바가지의 피를 쏟게 했고(밀입국), 91년엔 박노해로 하여금 고문에 못이겨 거울을 깨 동맥을 끊게 한 것도 부족해(사노맹) 92년 양홍관에겐 못된 성고문까지 가했다는(민족해방애국전선) 그의 전력이 사실이라면 17일의 호텔방 소동은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위안(?)으로 다가 왔을 수도 있다. 이는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정형근에게 깨우침,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정형근을 볼 때마다 나는 시대와의 불화, 더 심하게 말하면 변태적 천재성을 보는 것같다. 아주 똑똑하고 치열한 의식을 가진 사람일 수록 종종 정상적인 사회와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천재성을 인정받다가 어느날 졸지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크게 봐선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정형근은 머리가 좋다. 서울대 법대(64학번) 출신에다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학교 시절엔 법대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을 맡아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는 <영웅시대>에서도 다뤘던 삼성재벌 사카린밀수 규탄데모(66년)와 6·8 부정선거 규탄데모(67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훌륭한 운동권이 공인이 된 후 되레 운동권을 때려잡는 선봉에 섰다는 것도 대단한 아이러니다. 머리가 좋기 때문에 호텔방 소동을 자꾸 거론해 봤자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직감하고 며칠간 침묵으로 일관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형근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음습함으로 각인된다. 그가 국회에서 특유의 상기된 표정으로 폭로를 할 때나 혹은 북한얘기만 나오면 무조건 빨갱이 덧칠을 해대는 원색의 수구신념을 보일 때마다 많은 이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이런 분위기가 정권 재창출을 간절히 바라는 한나라당에 그늘을 짙게 드리움으로써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대권의 9부능선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마지막 깔딱고개에서 좌절했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한 때 정형근이 이부영과 어깨동무하고 대여투쟁의 선봉에 나설 때 사람들은 정형근보다 이부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이부영은 정형근이 주도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을 폭로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다. 지금 정형근이 한나라당에게 바로 이런 역효과를 안긴다고 하면 부인하겠는가. 역설적이지만 한나라당엔 훌륭한 인품의 의원들이 많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운동권 출신들을 평생 투쟁만 일삼은, 10원 한푼 벌어보지 못한 사회적 미숙아로 치부하고 싶다면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가정에 정상적인 교육을 누린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연히 아침 햇살같은 휴머니즘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들이 정형근과 한솥밥을 먹는다면 말이 안 된다. 한나라당의 부조화는 바로 이런 것이고, 이것이 정권 재창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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