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江)과 내(川)가 있으면 반드시 다리가 있다. 다리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고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얽혀 있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리의 연기가 돋보이는 '워털루 브리지'(우리 나라에선 '애수'라는 제목으로 상영됨)라든지, 전쟁의 포화로 얼룩진 '콰이 강의 다리' 등 이루 그 숫자와 사연을 헤아리기 어렵다.
청주사람들의 아련한 기억 속엔 늘 남석교(南石橋)가 마음의 한 귀퉁이에서 추억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무심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이 냇물을 가로지르는 남석교를 빼놓을 수 없다. 남석교는 우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라는 점이 애향심을 자극한다. 이 다리는 청주시 석교동 126의 44번지 일대, 쉽게 말해서 육거리 재래시장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 지하에 묻혀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다.
용암사에 보관중인 한 쌍의 고려견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2m 안팍의 팔각 기둥위에 아직도 방울을 단 고려견이 천년사직을 굽어보고 있다. 발톱도 조각되어 있으며 꼬리가 몸 전체를 살짝 감고 있다. 충북대 교정에 보관된 고려견상 1기는 머리부분이 없는, 반파된 상태다. "내가 있던 자리가 어디냐" 고 고려견은 포효하나 남석교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한다.
남석교는 내(川)의 이쪽 저쪽을 이어주는 물리적 다리 역할이외에도 정신적 문화가 배어있는 곳이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다리 밟기'라는 민속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이중 '남석교 답교놀이'는 '강릉 하평 답교놀이', '안양 만안 답교놀이', '수원 답교놀이' 등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답교놀이 풍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자기 나이 수대로 다리 위를 오간다. 스무 살이면 20번, 쉰 살이면 50번을 오가며 건각을 기원한다. 여기에다 영복송액(迎福送厄)이라는 주술적 의미도 보태어졌다.
길이 64m에 이르는 남석교를 현장에 복원하면 우선 옛 도시 청주의 역사성을 크게 살릴 수 있다는 점이 큰 수확이다. 이를 현장에 복원하여 대형 유리로 씌운 뒤 다리 밟기 등의 행사를 벌이면 역사 관광과 더불어 육거리 재래시장의 활로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2천년, 청주 역사의 영욕과 함께 숱한 인류의 족적이 묻어 있는 남석교는 이제 그 부활의 징후가 보인다. 부디 오랜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임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