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이른 아침 가까운 벗과 함께 상당산성에 올랐습니다. 멀리 청주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는 아직 잔설(殘雪)이 덮여 있었고 겨우내 수도승처럼 비탈에서 산을 지킨 나무들 사이로는 추위도 잊은 새들이 지저귀며 날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눈부신 햇살에 대기는 맑고 싱그러웠습니다.

입춘을 지난 지가 한참이요, 우수(雨水)가 어제였으니 절기상으로는 이미 봄이 시작되고 있는 셈입니다. 기온은 아직 영하에 머물러있지만 한겨울 만물을 움츠리게 했던 매서운 바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땅속을 깨우고 있습니다. 날은 차도 바람은 겨울 바람이 아니고 햇볕 또한 어제의 그 햇볕이 아닙니다.

춥고 배고프던 어린 시절 이 무렵이면 우리는 양지쪽에서 옹기종기 봄을 맞곤 했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녹아 낙숫물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상념에 젖은 늙은 어미 소가 반추를 되풀이하는 곁에서 이 땅 가난한 우리의 봄은 시작되곤 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는데 이제 겨울이 물러가려 하니 미상불 봄은 저 산아래 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쓰나미다, 북한 핵이다, 자살테러다 세상이 어지럽고 남북갈등, 지역갈등, 보혁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에 넘치는 범죄, 사건 사고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때맞춰 오고, 가고 있습니다. 질서정연한 대 자연의 순환 앞에 인간의 이기주의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어제오늘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설날 귀성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는 것 말고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어려운 명절 민족의 대이동은 고향에 돌아가 재충전을 하고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설을 전후해 경기회복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백화점이나 시장의 매출이 늘어 전망이 밝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불경기로 고통 받아온 국민들에게 경기가 살아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낭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발 불황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그늘진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 되려면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가 몇 차례 더 있을 터이기에 말입니다. 동장군이 물러가되 그냥 물러가지 아니하고 봄이 오되 그냥 오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까닭입니다.

때마침 전국에 눈비가 내려 메마른 대지를 흠씬 적셨습니다. 비가 그치면 나무들은 생기를 더 하고 가지 속에 부지런히 수액을 나르며 새싹을 틔우려 더욱 바빠질 것입니다.

잠시 세상일을 잊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의 먼지를 털고 봄맞이 준비를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저기 봄이 오고 있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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