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속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대통령 묘역에 잠들어 있는 박정희 전대통령은 요즘 ‘심기’가 몹시 불편할 듯 싶습니다.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에 이어 한일회담 문서공개, 영화 ‘그때 그 사람들’등의 파문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번에는 그가 직접 쓴 광화문현판을 떼어내고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는 문화재청의 방침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서울 세종로에 있는 광화문의 한글현판 ‘광화문’은 1968년 정부가 광화문을 새로 축조하면서 당시 2기 대통령에 연임 중이던 박대통령이 친필로 써 붙인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각종 기념물의 표기가 한자일색이던 때라서 박 전대통령의 한글체 ‘광화문’ 현판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고 당대의 서예가들 사이에서도 “정통 필법은 아니지만 서체가 힘차고 간결해 개성이 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일제시절 대구사범학교 재학 때 붓글씨를 배워 상당한 필력(筆力)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판 교체 계획이 알려 지자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각계 각층의 찬반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학계·정치권·언론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벌떼처럼 일어나 정치적 음모론까지 등장시키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의 보수신문들이 “왜, 하필 지금이냐”고 시비를 걸며 정치적 배경설을 잇달아 제기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박근혜대표 흔들기라고 반발하고 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바꾸는 게 옳다” “아니다”로 찬반이 엇갈리면서 한글학회는 ‘광화문 한글현판 지키기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한 실정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휘호는 기념물 뿐 아니라 신문사들도 사세(社勢)과시용으로 해마다 창간 기념 특집호에 싣는 것이 관행입니다. 박 전대통령의 휘호는 충청일보에도 한 점이 보존되어 있는데 1966년 3월 1일 창간 20주년 특집호에 게재했던 ‘言論의 矜持’가 그것입니다.

또 중부매일에는 1992년 10월 16일 창사3주년 때 노태우 대통령이 쓴 ‘社會의 木鐸'이 지금 보존되어 있습니다. 둘 다 필자가 일선기자 시절 특별청탁을 하여 어렵사리 받아 낸 것들입니다. 이와는 다르지만 박 전대통령은 1973년 충북실내체육관 준공을 기념하여 ‘忠北體育館’이라고 휘호를 써 주었습니다.

당시 지방에 글씨를 써 주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부인 육영수여사의 고향 도라 하여 처남인 육인수의원을 통해 특별히 써 준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이 현판은 박 전대통령 시해 뒤 청주체육관으로 이름이 바뀌더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당시만 해도 광화문 한글현판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면서 칭송의 대상이었는데 당사자가 고인이 되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기에 말입니다.

역사는 좋은 것만이 기록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나쁜 것은 나쁜 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러잖아도 나라가 어수선하고 경제난으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 하등 시급한 일도 아닌 현판 글씨를 놓고 왈가왈부 시비를 벌이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꼭 교체를 해야겠다면 한 두 사람의 생각으로 밀어 부칠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국민 여론을 모아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박정희가 밉다고 글씨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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