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박준봉씨, 98년 외아들 잃고 7년간 법적투쟁
청주지법,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은 순직합당” 판

걍惻? 24일 청주지법 행정부(재판장 노만경 부장판사) 재판정을 나선 박준봉씨(65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의 가슴은 기쁨과 설움으로 벅차 올랐다. 지난 98년 군부대에서 자살한 아들 진성씨(당시 23세)의 원혼을 7년만에 풀어줄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날 청주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유족등록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군복무 중 상급자의 상습적인 욕설과 가혹행위로 인해 자살했다면 직무수행중 사망한 것으로 순직 군경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보훈처는 ‘자해행위(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며 아들 진성씨의 순직처리를 사실상 거부해왔다.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영혼이나마 되살리기 위해 나선 아버지 박씨의 7년 역정을 정리해본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부대로 들어가고 나서 하룻밤새 시체로 변했다. 우리 애를 괴롭힌 상급자들은 모두 죄가 밝혀져서 구속되고 재판받았다. 그런데 억울한 진성이는 국립묘지에도 못가고 보상도 전혀없고 그냥 개죽음이 되고 만거다” 외아들 진영씨는 청주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충청대학 2학년 재학중인 98년 7월 군에 입대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지난 98년 1월 24일(월) 오후 4시께 아들이 근무하는 충남 논산시 두마면 육군 32사단 ㅇㅇ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요일인 전날 저녁 입대후 처음으로 외박을 나온 아들 진영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부대앞까지 데려다 준 박씨는 뜻밖의 전화에 긴장했다. 부대 관계자는 “우리가 관리를 잘못해 불상사가 일어났다. 진영이가 다쳐서 병원에 있다”며 방문해 줄 것을 청했다. 놀란 박씨는 ‘많이 다쳐느냐’고 되묻고는 서둘러 부대로 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아들은 이승의 자식이 아닌, 저승의 몸이었다.

부검에 나타난 멍자국 의문
아들의 시신은 당일 오후 2시께 부대막사 뒤편 보일러실에서 나일론끈으로 목을 매 숨진채로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아침 7시께 위병소 근무를 마친 진영씨가 공포탄 실탄 1발을 분실한뒤 고참들의 구타 기합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외동아들의 죽음은 말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부대에서는 ‘변사이기 때문에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며 박씨의 동의를 구했다. 정신을 추스린 박씨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진영이가 죽기 3일전 입대후 처음으로 외박을 나왔다. 용돈을 주려니 필요없다 하고, 부대에서 먹으라고 떡 좀 싸줄려 했더니 그것도 안된다고 말렸다. 군대에서 철이 드는가 보다 싶어 얘기를 시켜보니 ‘상병 고참 두사람이 자기를 많이 괴롭힌다’고 하소연했다. ‘군대생활 다 그런거니까, 잘 참으라’고 하고 보냈는데, 귀대하고 하룻만에 자살했다니 그 말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신 부검을 하려면 내가 지정하는 의사가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친척인 경찰대병원 의사한테 연락해 부검을 받게 됐다”

부검결과 사인은 경부질식사(목졸림)로 밝혀졌지만 갈비뼈 3개에 금이 갔고 신체 여러부위에 멍이 발견됐다. 따라서 박씨와 유가족은 부대내의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했고 자체 조사결과 7명의 상급자들이 지속적으로 아들 진영씨를 구타하거나 기합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모상급자는 밤에 코를 곤다는 이유로 깨워 구타하고 자신이 잠들때까지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기합을 주기도 했다는 것. 이들은 모두 상해혐의가 인정돼 구속되거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부대내 고참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가 밝혀지자 박씨는 국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99년 1심 재판부인 서울지법은 자살의 원인이 가혹행위라는 점을 인정해 국가가 유족인 박씨에게 9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다른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진영씨의 죽음이 직무와 관련된 순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현행 국가유공자예우법에 근거해 보상을 받아야 하며 배상신청은 기각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도 지난 2000년 9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하며 진영씨의 죽음은 ‘순직’이라고 명시했다.

청주보훈지청, 유공자등록신청 거부 패소
결국 박씨는 빠듯한 살림에 소송비용만 들인 셈이었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주변의 권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이때 인권위측은 박씨에게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유족등록신청을 내도록 권유했다는 것. 박씨는 2002년 8월 등록신청을 했으나 이듬해 3월 국가보훈처는 “상급자의 구타나 가혹행위가 있었지만 이는 훌륭한 병사로 거듭나기 위한 모든 신입병들의 과정이고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공포탄 분실에 따른 처벌이 두려워 자살한 것으로 순직군경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불가통보를 했다.

마지막으로 박씨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는 보훈처를 상대로 ‘국가유공자유족등록거부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던 것. 박씨는 거주지인 청주보훈지청장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했고 남태우 변호사가 승소할 경우 수임료를 받는 조건으로 사건을 맡았다.

변호인은 “사망이 비록 자살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망인(고 박진성씨)의 정상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해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가유공자예우법상 순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에대해 청주보훈지청측은 “국가유공자는 법제정 기본이념에 따른 국가를 위한 공헌과 희생이 필수적이어야 한다. 공포탄 분실로 처벌이 두려워 자살한 사병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청주지법 행정부는 2000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일치된 견해로 “직무수행중 사망한 자로서 순직군경에 해당한다”며 보훈지청의 국가유공자유족등록거부처분이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7년만에 처음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보훈지청이 이번 판결에 항소를 제기하면서 법적다툼은 다시 재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박씨는 심신의 누적된 피로 때문에 지난해 중풍으로 쓰러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놈 생각하면 세상에 어떤 미련이 있겠는가? 착하고 순진한 애가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군대에 데려갈 권한이 있다면 보호할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 권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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