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 모방 '차별성없다'-'시대 감각 따라야' 반론

민선 3기 출범 이후 각 자치단체별로 이미지 홍보를 위한 도시 키워드 개발 붐이 일면서 도내 자치단체에서도 지역 특성을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키워드 선정 작업에 봇물이 트였다. 그러나, 기존에 키워드를 발표한 모든 자치단체의 브랜드명이 한결같이 영문 슬로건 일색으로 이뤄져 지역의 전통과 특색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한계가 있고, 우리말 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어 자치단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천시의 경우 시 승격 25주년과 시군 통합 10주년을 맞아 지난해 말 도시의 키워드로 ‘나이스 제천(NICE JECHEON)’을 선정하고 이를 제천을 알리는 상징물의 주제어로 활용하는 등 지역 이미지 홍보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이에 앞서 제천시는 지난해 11월 10일부터 12월 9일까지 한 달 동안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천의 상징 키워드를 공모해 총225건의 응모작을 접수받은 바 있다. 또 12월 24일에는 제천문화원장, 대학 교수, 예총지부장, 시의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네 차례 심사를 거친 결과 최종적으로 나이스 제천을 지역 키워드로 선정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하이 서울’을 도시 브랜드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부산광역시(다이나믹 부산), 울산광역시(울산 포유), 경기도 수원시(해피 수원) 등 전국의 광역 및 기초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영문 슬로건 선점 작업에 나서면서 향토색이 배제된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제천시마저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해 서둘러 미국식 도시 키워드를 선정해 공표한 것은 지역적 자긍심과 주체성을 감안하지 않은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역의 한 향토학자는 “서울시가 이른바 지역 키워드로 ‘하이서울’을 선정하고 시내버스와 각종 홍보물 등에 영어식 신조어를 남발하는 바람에 지난해 10월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으로부터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히는 등 곤혹을 겪은 바 있다. 로마자로 도시 키워드를 발표한 다른 자치단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제천시마저 이에 편승해 로마자 키워드를 서둘러 공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물론 일본의 도쿄(Yes, Tokyo), 홍콩(Asia’s world city) 등 다른 나라의 비 영어권 도시에서도 로마식 브랜드명을 도시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도쿄, 홍콩, 서울 등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국제 도시의 세계화 프로젝트를 향토색이 짙은 제천시에 그대로 도입해 무미건조한 로마식 표기로 홍보하는 것은 무리”라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제천시 키워드의 영문 슬로건인 ‘NICE’의 경우 ‘Natural In City Energy’의 이니셜로 풀이되고 있으나, 이 역시 어법에 충실하지 않은 견강부회식 해몽이어서 로마식 표기에 급급한 무리한 말 만들기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어학자들은 “로마자를 사용해야만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식의 사대주의적 사고가 지역 행정에까지 만연해 갈수록 영어식 슬로건이 남발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다른 분야는 몰라도 지자체나 행정 용어에서만큼은 우리말을 앞장서 지켜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도시명조차 로마자 표기로 변색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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