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임대차 보호법 난항 겪으며 오히려 상인피해 증가
청주시 가경동 모 상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37)는 지난달 건물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건물주인은 건물이 낡아 재건축을 하겠다며 연말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물주는 이 상가에 입주해 있는 다른 세입자들에게는 아무 말 없이 이씨를 비롯한 몇몇 상인에게만 가게를 비울 것을 통보한 것이다. 이씨는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건물 전체를 비워야 하지만 몇 몇 점포만 비워달라고 하는 건물주의 말이 이상해 다른 세입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서야 건물주의 진짜 속내를 알아낼 수 있었다.
2년전 보증금 3000만원에 가게를 얻은 이씨가 지난 2월 재계약을 하면서도 보증금을 올려주지 않자 아예 내보낼 계산을 한 것이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IMF 이후 임대료가 떨어지다가 지난해 부터는 다시 올라가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임대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아예 나를 내보내고 임대료를 높여 다른 세입자를 들이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건물주인을 찾아가 내년 재계약 때 보증금과는 별도로 매월 50만원의 월 임대료를 내기로 하고 일을 무마시켰다. 목돈을 마련하기 힘든 이씨가 가까스로 월 임대료를 내는 것으로 건물주를 설득한 것이다.
이씨는 “억울했으나 가게를 옮길 경우 시설투자비를 건질수도 없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마당에 가게를 옮긴다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이씨와 같이 건물주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중소 상인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씨의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건물주가 부도 등으로 건물을 날릴 경우 임차 상인들은 고스란히 보증금을 떼이고 길거리로 나 앉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의 부도와 강제경매를 통해 임대보증금을 갈취하는 경우마져 발생하고 있다.

이중계약에서 위장 경매까지

임차상인들이 건물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것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시작된다.
상당수 건물주들은 점포를 임대하며 이중계약서 작성을 요구한다. 하나는 보관용이고 또 하나는 세무서 제출용이다. 물론 임대소득세를 줄이기 위한 편법이다. 실제 보증금 보다 2배에서 3배를 줄이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 5배까지 줄여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상인들의 전언이다.
보증금 이외에 매달 지불하는 월세는 아예 계약서에서 제외한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 임대료 100만원으로 계약을 할 경우 실제 계약서 외에 보증금 2000만원만 명기한 계약서를 별도로 작성, 세무서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건물주는 월 100만원에 대해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게 되며 수입의 30%에 달하는 임대소득세도 크게 줄일수 있게 된다.
상인들은 이중계약서 작성은 이미 보편화된 관행으로 받아들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떼이지 않고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으면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청주시에서 상가가 경매되는 경우가 한달에 20∼30건에 이르고 있다. 1년이면 300여채의 상가가 경매로 인해 소유권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그 상가에 입주한 세입 상인들은 고스란히 임대 보증금을 떼이게 된다. 주택의 경우 임대보증금 2000만원까지는 법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상가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가를 임대하면서 전세권을 설정해 놓을 경우 얼마간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전세권 설정에 동의하는 건물주는 찾아 보기 힘든 실정이다.
건물주가 전세권 설정에 동의하는 경우도 은행권의 대출을 받을 대로 받은 뒤여서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실제로 보호받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차해 들어간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두 번이나 보증금을 떼었다는 송모씨(44)는 “건물평가액의 60∼70%를 인행권에서 대출받지 않은 건물이 드물다. 전세권을 설정한다 해도 채권 순위에서 밀려 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출액이 적은 경우도 계약할 때 전세권 설정을 요구하면 대출 가능액을 뺀 나머지 금액에서 동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상인들의 임대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점을 악용해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강제경매를 통해 소유권을 이전하는 악덕 건물주도 있어 이래저래 임차 상인들의 고통은 줄어 들지 않고 있다.
청주시 내덕동 모 상가의 경우 경매 처분돼 5명의 임차 상인들은 보증금을 모두 떼인 채 가게를 비우거나 또다시 임대료를 지급하고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상인들은 건물주가 임대보증금을 떼어 먹기 위해 위장 경매를 통해 소유권을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건물 경매의 원인이 임금 채권이라는 점과 경락자가 건물주의 인척이라는 점, 건물주가 상인들에 대해 경락 받은 새로운 건물주와 재계약할 것을 종용한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한 상인은 “집주인이 건물을 지으면서 인부들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경매가 진행 됐고 인척이 경락 받았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소유권이 넘어가 건물과 관련없는 전 건물주가 새 주인과 재계약을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장 경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 김진오 기자


10년째 끄는 상가임대차보호법
10년째 끄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사실 임차상인들이 이러한 불이익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0년전부터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자며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법률안이 심의에 들어간지도 수년째다.
그동안 상인들은 거리집회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왔다.
여기에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된 법안이 네건이나 돼 이에 대한 의견 조율도 선행돼야 해 이래저래 임차 상인들의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악덕 건물주들은 법안이 통과될 것을 대비, 사전에 충분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횡포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해 주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가임대차보호 관련 법안은 비주거용 건물임대차보호법안, 상가임대차보호법안, 건물임대차보호법안, 상가 등 비주거용 건물임대차보호법안 등 네건이다.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 법사위에서 몇 차례 검토작업이 이뤄졌을 뿐 법안 단일화 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당초 연내에 국회의 법안 통과가 기대됐지만 그것마져 미뤄져 또다시 국회 처리를 기약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다.
이렇게 법안 마련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데에는 은행권과 상가소유자 등의 반대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건물주들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며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고 은행권에서도 상가 등 비주거용 건물의 경우 대부분 지주들이 땅만 내고 공사비를 금융기관 대출로 충당해 완공한 뒤 담보를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 파장이 적잖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 상가 건물의 특성상 칸막이 공사가 쉬워 법원 경매시 위장전입자를 가려내기 힘들다는 것도 은행권에서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추진위원회 백상기 위원장은 “은행권에서 건축 관행을 들며 반대하고 있지만 주택임대차의 경우 처럼 일정액을 국가에서 보호하는 방안 등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심할 경우 한번에 두 세배의 임대료를 올리려는 악덕 임대인에 의한 피해는 이미 한계를 넘고 있다. 조속한 시일내에 관련 법안이 만들어져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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